نخستین 200 خط.
“여러분은 숲으로 들어간다 가장 어두운 곳을 골라서”
“그곳에는 아무런 길도 없다 조지프 캠벨”
“요르단강 서안, 2005년”
이스라엘군은 공격을 계속하여
베이트 라히야의 온실에서 일하던 일가족 6명 포함
7명의 젊은이가 죽었습니다
아바스 수반은 시온주의자의 포탄에 숨진
순교자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슬람 지하드는 이 공격에 복수하겠다는 성명을 냈습니다
2005년 2차 봉기 때였어요
“자유”
적과 만나러 베이트 잘라로 가고 있었어요
손에 피가 묻어 있는 이스라엘 군인들요
정보부나 안전부 소속이었을 수도 있죠
우릴 체포하거나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경고”
우리는 이스라엘 점령하에서 태어나 살고 있습니다
자유를 얻기 위해 뭐든 할 각오가 되어 있죠
이것까지도요
“이스라엘, 2005년”
어제 텔아비브의 자살 폭탄 테러 희생자 5명이
오늘 묻혔습니다
이 공격으로 38명이 다쳤습니다
알아크사 열사단은 자기들이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샤론 총리는 책임 있는 자들이
벌을 받을 때까지 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누군가 전화해서, 우리를 만날 팔레스타인인이 있다고 하더군요
두 번째 검문소를 통과할 때 공포가 몰려왔어요
“팔레스타인 당국이 관리하는 A 지역으로 가는 길”
“이스라엘 국민 출입 금지”
“생명에 위험하며 불법입니다”
위험한 사람들이죠
손에 피를 묻히고 있죠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이고
함정일 수도 있죠
이스라엘인인 걸 모두 알아보는 것 같았어요
곧 우리를 공격할 거고 이게 다 계획이겠죠
무기도 없었어요 아무것도요
어떻게 될지 몰라서 조바심이 났어요
할아버지 이야기부터 시작하죠
“첸 알론 텔아비브”
할아버지는 폴란드에서 나셨어요
가족 중 가장 열렬한 시온주의자셨죠
그래서 1930년대 중반 폴란드를 떠나셨어요
가족을 버려두고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셨죠
형제, 자매, 부모님 삼촌, 숙모, 사촌
모든 사람이
다 죽었어요
할아버지는 시온주의 덕에 살아나신 거죠
그래서 우리 가족은 여기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로써 이스라엘 땅에
이스라엘이라고 명할
유대인 국가 건국을 선언합니다
이스라엘은 유대인이
다른 사람들에게 학살되지 않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주거지입니다
일요일 아침 최초의 이집트 비행기가 텔아비브에 폭탄을 투하했습니다
아랍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자신들이 소유한 단 한 가지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제 여정의 시작은
“자밀 카사스 데이셰”
팔레스타인인의 여정의 시작입니다
이스라엘의 건국은 우리의 재앙이었죠
1948년에 우리 가족은
알크바이바라는 팔레스타인 마을에 살고 있었어요
여러 대 동안 살아온 곳입니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마을을 대부분 점령했죠
우리 가족을 포함해서 사람들 대부분이 쫓겨났죠
떠나기를 거부한 할아버지는
집에서 살해됐습니다
우리 가족은 알데이셰 난민 캠프로 이사해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속죄일 공격을 받을 때 저는 4살이었어요
사이렌 소리가 기억나요
텔아비브의 피난소로 뛴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는 라디오 안테나를 피난소 밖으로 빼서
뉴스를 듣고는
피난소 안 사람들에게 상황을 알려줬죠
IDF 보도에 따르면 오후 2시경 이집트군과 시리아군이
시나이와 골란 고원에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아버지는 피난소를 나와 참전하셨죠
시리아의 골란 고원 공습에 이어
나라 전역에서 사이렌이 들립니다
이건 실제 상황입니다
진짜 위협이었어요
어린이들에게는 아주 구체적이었죠
우리를 죽이려 한 거니까요
여기는 ‘타이거’ 더는 버틸 수가 없다
적이 ‘타잔’에서부터 밀려온다 이제 소개해야...
전 텔아비브에서 멀지 않은 키부츠에서 자랐습니다
10대가 되자 잘 알게 됐죠
“아브너 위시니처 예루살렘”
이스라엘 사람이 된다는 의미를요
무엇보다도 군대였던 것 같아요
주변은 온통 전쟁 얘기와 기억뿐이었죠
학교에서, 행사에서...
제 삼촌은 전사했어요
전 모르는 분이지만
우리 가족이었죠
제가 10살 때 팔레스타인 해방군이었던 삼촌이 죽었죠
어머니에게 물어봤어요
왜 팔레스타인 군대는 없냐고요
항상 얘기하시던 우리 마을엔 왜 돌아가지 않느냐고요
우리는 이스라엘 점령지에 살고 있고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인을 통치한다고 하시더군요
명확히 하겠습니다
“야세르 아라파트 PLO 의장”
얼마가 걸리더라도
지구상의 어떤 군대도
우리 국민의 국가를 뺏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실완의 집을 부술 때마다
“모하메드 오웨다 실완”
군대가 와서
불도저를 보호했죠
어린 우리는 가까이 갈 수 없어서
지붕이나 발코니에서 지켜봤어요
고통스러웠죠
거리에는 분노가 넘쳤습니다
오늘 아랍 테러리스트가 이스라엘 마을을 공격했습니다
2개월 동안 4번째입니다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이스라엘 고등학생 16명이 죽었고 70명이 다쳤습니다
3명의 아랍 테러리스트는 이 지역에 며칠 동안 숨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십대들이 가득한
학교를 공격할 때까지 발각되지 않았습니다
한 달 전 키리야트 쉬모나 마을에서의
이스라엘인 18명의 학살이 이보다 더 잔혹했지만
부상자 중 일부가 사망한다면
사망자 수는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테러는 계속되고 있고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
우리도 계속 대응해야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점령군이 우리를 파괴하고
“시파 알쿠드시 툴카렘”
죽이는 걸 봤어요
제 기억 속 첫 살인은 이브라힘 만수르인데
가족을 만나러 온 대학생이었죠
그들이 툴카렘에 쳐들어와
우리 집 앞에서 그를 죽였죠
그날 본 피는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팔레스타인의 혁명가를 좋아했어요
문을 닫고 그 노래를 듣곤 했죠
팔레스타인 혁명군이 되어 쿠피야를 두르고
“술라이만 카티브 라말라”
군복을 입고 칼라시니코프 총을 들고
점령군에 대항하는 일원이 되는 꿈을 꿨죠
TV에서 사브라와 샤틸라 학살의
끔찍한 광경을 봤어요
레바논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이오
이들을 동정하고 그 복수를 하겠다고 생각했죠
이 이상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됐어요
전 18살에 군에 들어갔습니다
전차 부대에 들어갔죠
이스라엘군에서 가장 명망 있는
사예레트 마트칼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아버지도 자랑스러우셨을 거예요
기초 훈련을 마치고 서안으로 파병됐습니다
모든 점령지에는 통행금지령이 내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밤에는 아무도 밖에 있을 수 없었죠
군은 난민촌에 매일 통행금지를 내렸습니다
저녁 5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까지요
이걸 어기면 체포되거나 폭행을 당했습니다
제가 막 16살이 될 때였고
동생 나세르는 14살이었죠
50m 떨어진 삼촌 집에 가려고 나섰는데
중간에 군대에 발각되어 겁을 먹고 도망갔죠
군인들이 동생을 쫓아가서
총을 쐈어요
동생은 죽었어요
그걸 어떻게 이겨냈는지 모르겠어요
하늘이 무너져내린 것 같았죠
이스라엘의 점령지에선 점령군과 팔레스타인 시위대 사이의
야간 충돌이 더 빈번합니다
처음으로 돌을 던져야 할 일이 생겼을 때, 돌을 집었습니다
지프 안에 군인들이 있었고 총에 맞을 수도 있었죠
하지만 몸을 숨기고 얼굴을 가렸습니다
나는 돌을 들고 상대방은 총이 있지만
대등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중요한 건 죽이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고통을 준 자들에게
증오를 표출하는 것이었죠
수백 명이 시위하며
소리 지르고 돌을 던졌죠
증오와 적대감, 폭력의 강이었습니다
저 자신을 지켜야 했죠
왜 우리를 이리도 싫어하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공포란 건 전혀 없었어요
탄압하는 자에게 저항해야 하니까요
돌과 화염병의 공격을 받았죠
맞으면 다칠 수도 있는 벽돌 조각이었어요
“마이아 하스칼 노핏”
우리 부대의 군인들이 다쳤어요
힘의 관계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은 명백했어요
우리에게도, 적들에게도 명확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뭔가를 시작하지 않겠죠
그들을 여기에서 조용히 지배하고 있지 않으면
텔아비브에서 우리를 학살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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