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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스카우트로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오늘 오전 8세, 9세, 10세 여아가 폭행으로 사망했습니다
범행은 오클라호마 북동부에서 일주일간 진행되는
"여아 3명 살해 로커스트그로브 캠프"
걸스카우트 캠프 첫날 밤에 벌어졌습니다
걸스카우트 살인사건은 오클라호마에서 발생한
"걸스카우트를 덮친 비극"
가장 끔찍한 범죄입니다
악랄한 살인사건을 여럿 봤지만
캠프에 온 걸스카우트를 이런 식으로 살해한 건 처음 봤죠
가까이 갈수록 아이가 죽었다는 게 확실해졌어요
"스콧 캠프 빌 미첼 보도"
피해자의 신원은 9세 미셸 구스와
8세 로리 리 파머 10세 데니즈 밀너로 파악됐습니다
맞아 죽은 여자애 셋을 발견했는데 제 딸이 그중 하나라고 했어요
브로큰애로에 있는 우리 집에 있다가
"크리스티 체노웨스 우는 모습"
이 비극에 관한 뉴스를 봤어요
당시 피해자들과 또래여서 그 캠프에 갈 수도 있었지만
병에 걸려서 엄마가 못 가게 했어요
평생 그게 마음에 남더군요
44년이 지났는데 어제처럼 그대로였어요
- 간단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 보통 수수께끼가 아니에요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우리 주의 사람들은 이 사건에 집착하게 됐어요
죗값을 치를 사람을 원했어요
"1968.6.18. - 1977.6.13. 로리 리 파머"
우리가 찾는 이 사람은 정체가 뭐죠?
끝나지 않은 사건입니다
45년 전, 우리의 순수를 앗아간 그 살인사건이
지금까지도 뇌리를 떠나지 않아 답과 치유를 얻고자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캠프의 끝마다
걸스카우트 하나가 마지막 모닥불의
걸스카우트 살인사건
재 지킴이가 됩니다
피해자들은 수십 년째 불에 탔습니다
이제 그 불을 끌 시간입니다
오클라호마에서 범인을 수색 중입니다
"걸스카우트 살해"
8세, 9세, 10세 걸스카우트가
오늘 폭행으로 사망한 채 발견됐고
최소 한 명은 성추행당했습니다
범행은 오클라호마 로커스트그로브 걸스카우트 캠프에서 벌어졌으며
세 피해자는…
오클라호마로 오면서
여러 이야기를 접하게 됐지만
"팀 스탠리 '털사 월드' 기자"
이 살인사건은
오클라호마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사람들은 그 범죄의 끔찍함에 여전히 치를 떱니다
현재 시각 7시 6분
밥 샌즈의 뉴스입니다 오늘 아침 소식 전해드립니다
주지사는 로커스트그로브 걸스카우트 살인사건의
"밥 샌즈 베테랑 언론인"
수사 진행 상황에 만족한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했어요
잔인하고 무분별했으니까요
1977년 당시 젊은 기자였던 제게 충격적이었던 건
"마이클 베처 베테랑 언론인"
아이들이란 거였어요
피해자가 아이들이었다는 사실은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로리 리에게 중요한 한 주였습니다
첫 캠프 일주일 후 이번 주 토요일에 열리는
아홉 번째 생일 파티를 기다리고 있었죠
6살 미스티, 3살 채드 8살 로리 사진이에요
로리가 우리 첫째였죠
"셰리 & 보 파머 로리의 부모"
로리는 예쁘고 정말 똑똑했어요
하지만 가장 기특했던 건
동생들이 생겨도 좋아했던 점이었죠
채드를 낳고 퇴원했을 때 사진이에요
동생들을 사랑했고 잘 챙겼어요
의대에 간 애가 둘이고 인턴 하나
해군 하나, 레지던트 하나 7년간 총 다섯을 낳았어요
전 외동딸이고 이 사람은 여형제 하나뿐이라서 그래요
우리는
집이 아이들로 가득하면 재밌을 것 같았어요
- 재밌으셨고요? - 네, 즐거웠어요
전 1977년 스콧 캠프에서 살해된 도리스 데니즈 밀너의 엄마
베티 밀너입니다, 데니즈가 어떤 애였는지 궁금하다고요?
네
아주 뛰어난 아이였어요
네 살 때 읽기, 쓰기, 셈법을
혼자 깨쳤습니다
뭐든 끼고 싶어 했고
사람들을 좋아했어요
어디를 가든 꼭 말을 걸고 싶은
사람이 생겼죠
"베티 밀너 데니즈의 엄마"
저는 가려고 해도 데니즈가 기다리라고 했어요
좀 더 얘기를 해야겠다는 거예요
잘 때도 똑같았어요
'엄마, 하고 싶은 얘기가 하나 더 있어요'
캠프에 가는 날까지도 데니즈는 정말 기대하더니
갑자기 가기 싫다고 했어요
저는 일단 가라고 했죠
가서 어떤지 보고
별로면 그때 데리러 가겠다고 했어요
"오클라호마 브로큰애로"
"밴데버 초등학교"
다른 곳에서 자랐다면
저는 다른 사람이 됐겠죠
그건 확실해요
로리와 데니즈는 몰랐지만
"크리스틴 체노웨스 배우 및 가수"
미셸 구스와 같은 학교에 다녔어요 동갑이었거든요
구스 씨는 오빠의 선생님이었죠
미셸과 아는 사이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복도에서 마주치면 인사하는 사이였냐고 묻는다면
맞아요 학교 복도에서
잠깐이라도 보던 사람을
더는 볼 수 없어진 거죠
늘 가슴에 품고 살았어요
살면서 겪은 모든 일이…
"케이딘"
좋은 기억들까지
떠올랐어요
왜냐고요?
부당하잖아요
우린 전체 내막을 전하지 못했어요
우리 업계에서는 그런 일을 할 기회가 드물죠
일종의 침입자라 중간에 불쑥 끼어들어서
참견하다가 가버리는 역할이에요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생각하게 돼요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항상 생각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던'
'의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 싶다'
이 사건도 그중 하나죠
신과 조국을 위해 제 의무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
항상 남을 돕고 걸스카우트 규칙을 따르겠습니다
모두를 위한 자유와 정의가 있는 공화국에 충성을 맹세합니다
친구로 함께 자란 우리
함께 길을 걸은 우리
함께 별을 바라본 우리
우리 많은 일을 함께했어
무수히 많은 일을
걸스카우트 노래예요
처음 스콧 캠프에 간 건 1971년 여름이었어요
"카를라 윌하이트 1977년 스콧 캠프 지도원"
처음으로 집을 벗어나 부모님에게서 멀리 떨어졌죠
그러면 향수병이 좀 생기는데
하루 이틀만 지나면
"주니어 걸스카우트 교본"
다 잊어버리고 집처럼 지내게 돼요
인생이 바뀌는 경험이었죠
자유도 많고
친구도 추억도 많이 만들었어요
첫 여름 이후, 의심할 여지도 없이
여름마다 그 캠프에 가고 싶었죠
1977년에 처음으로
걸스카우트 지도원으로 채용됐습니다
캠프에 가는 게 좋았어요
캠프에 가려고 짐을 싸고 준비하는 일이 즐거웠죠
"준비물"
제복도 좋았고
직접 따는 배지들
일궈내고 지켜가는 우정도 좋았어요
우리는 자매와 같았죠
일요일 아침에 짐을 다 쌌어요
로리가 어찌나 신나 하던지!
정오쯤 걸스카우트 본부에 갔죠
부모와 애들, 형제자매들로 북새통이었어요
- 여행 가방에 더플백 천지였고요 - 대형 버스도 많았어요
그해 제 모습이에요
젊을 때 멜빵바지를 많이 입었죠
1977년 여름 저는 15살이었습니다
버스가 대기 중인 곳으로 가서
"미셸 호프먼 1977년 스콧 캠프 조감독"
애들이 버스에 탔는지 확인하고 캠프까지 잘 보내는 게
제 일이었죠 버스 출발 시각이 다 됐을 때
여자애 하나랑 엄마가 버스 밖에 있는 걸 봤는데
여자애 얼굴을 보니 가기 싫은 티가 났어요
제가 다가갔어요 '안녕, 난 미셸이야'
대화를 나눴고
여자애는 저랑 같이 버스에 타겠다고 했어요
얘기하던 중에 아이의 엄마가 버스에 다시 와서
애가 향수병에 걸리면 집에 전화하게 도와달라고 했고
저는 기꺼이 도울 거고 아이를 지켜보겠다고 했어요
캠프에 도착하는 것 자체도 하나의 경험이었습니다
주요 고속도로를 달리거든요
로커스트그로브는 북쪽으로 3km 가면 있어요
고속도로를 벗어나면
쿠키 오솔길이 나옵니다
자갈투성이 비포장도로인데
오지라는 얘기죠
정말로 고속도로를 벗어나고
나오는 길을 보면 무슨 포털을
통과한 느낌이에요
문명사회에 있다가
선사시대에 간 듯한 광경이 펼쳐집니다
캠프에 도착하면 버스들이
직원 숙소 지역에 주차하고 모두 짐을 내립니다
단위대별 표지판이 있어요
전 데니즈가 갈 곳을 알아서
도착하고 데니즈에게 말했죠 '카이오와 표지판 보이지?'
'저기에 짐을 두면 돼 지도원도 저기서 만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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