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200 lines.
스튜어트 홀은 신좌파를 세운 일원이다
그는 문화 연구를 구축한 핵심 인물이며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이다
그는 문화 연구가이자 널리 알려진 지식인으로서
텔레비전과 라디오에 50년 동안 출연하였다
사회적 변화가 자신에 대한 자각과
우리가 느끼는 권리와 우리의 사회적 역할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이 방송은 방송 대학의 사회 과학 과정에서 제작됐으며
일상 속의 요소들이 어떻게 한 개인을 변화시키고
사회 변화의 정확한 척도를 제공하는지를 알아봅니다
제가 19살인가 20살 때
마일스 데이비스가 내 영혼을 잠식했어요
그의 다양한 분위기는 제 감정 변화와 비슷했거든요
가보지 않았던 길에 대한 후회의 감정은 계속됐죠
불확실성, 초조함과
이룰 수 없는 옛꿈에 대한 향수가
마일스 데이비스의 트럼펫 소리에 녹아 있었죠
매우 다른 두 가정을 경험하면서
새것이 옛것을 어떻게 대체하는지
다문화 주체의 복합적인 삶을 다룬 이 영화는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조사했습니다
스튜어트 홀의 방송과 각종 사진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두 가족은 지난 40년을 되돌아보고
전쟁 이후 영국에 나타난 사회적 변화가
그들의 삶에 끼친 영향을 고려해 볼 것입니다
이 두 가족 역시 영상에 삽입된 음악은
큼지막한 사건보다는 일상의 미미한 변화가
그들의 삶과 역사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줬다고 합니다
그가 평생을 즐겨 들어온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과 함께
어느 날 프로그램 담당자가 제게 묻더군요
서인도 제도 사람 중 출연할 만한 사람이 있냐고요
아마 아직도 이 상황을 모르고 있겠지만요
어쨌든 제가 스튜어트를 추천했어요
저와 미팅포인트에서 함께 일한 적이 있는데
정말 똑똑한 사람이니 한번 출연시켜 보라고 했죠
그런데 거절하더군요
스튜어트가 너무 똑똑해서 프로그램이랑 안 맞는다나요
뭐, 어찌 됐든 제 바람대로
이 자리에 모시게 됐네요
1980년대를 지나 새로운 시대가 찾아왔는데요
다가올 90년대의 문화계 흐름과
정치계 판도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스튜어트 홀 교수에게 그 답을 묻겠습니다
버밍엄 대학 문화 연구소 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방송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시죠
오늘은 다른 변화의 양상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노화의 과정입니다
우리는 각각 다른 양상의 단계를 거치면서
한 개인과 한 세대로서 일생을 삽니다
노화란 생물학적이나 유전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체성의 변화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두 가지 측면을 모두 살펴볼 겁니다
'대학 좌파 평론'의 편집장 시절에는
50년대 수에즈와 헝가리의 위기에 대한 기사를 실었고
문화 연구의 부흥을 이끌었으며
80년대 대처리즘을 분석하면서
스튜어트 홀은 영국 좌파의 가장 뛰어난 지식인이 되었습니다
모든 영국 사회의 계층에는 유대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린 그들을 소수의 공동체라고 여길까요?
그 이유는 사회 계층 간 이동이 있었어도
유대인은 거대하고 명확한 집단으로 남아
그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하였기 때문입니다
현재 영국에 있는 유대인은 50만 명이 넘습니다
대부분은 1890년대에 빈털터리로 영국에 와서
낙후된 지역에 살았던 이민자의 후손입니다
특히 이스트엔드 지역에 많이 살았죠
유대인 사회를 사라지게 할 수많은 요소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를 유지하도록 하는 중요한 요소가 존재합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현재의 뿌리가 되는
1890년대로 돌아가야 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현재
카리브해의 역사에 관한 프로그램을 맡고 계시죠
정체성에 관한 제 의문을 실험해 볼 장소거든요
카리브해에 정착한 사람들은 모두 타지 출신입니다
모두가 혼성체인 거죠
제 안엔 스코틀랜드, 아프리카 포르투갈계 유대인이 있어요
전형적인 21세기 인간이죠
대중의 사회적 문화적 정체성은
점점 복잡하게 뒤섞일 겁니다
그러면 카리브해는 혼합성의 고향이 되는 거죠
식민지에서 해방까지
저는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신분제를 겪었습니다
제 피부는 다른 가족들보다 세 톤은 더 어두웠습니다
그게 처음으로 인식한 제 사회적 정체성이었습니다
영국에 오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외면하려 했습니다
희망을 안고 영국에 왔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제 아버지가 태어난 집입니다
저희 가족에는 영국인의 피 아프리카인의 피와
포르투갈계 유대인의 피가 흐르고 있어요
동인도인의 피도 흐른다는 말이 있죠
제리 고모는 노년임에도 여전히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카리브해로 돌아가서 실험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돌아갈 뿌리가 없이도 인간이 살 수 있는지를요
제 뿌리는 하나가 아니라
다섯 개나 되니까
국제적 경험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늘 긴장 속에서 살았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정체성인 젊고 똑똑한 자메이카인과
그런 저의 정체성을 거부하는 가족과 갈등이 있었으니까요
어떤 피부색을 가졌는지가
식민지였던 자메이카에서는 아주 중요했습니다
피부색만으로 교육 수준과 신분을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아주 어릴 적부터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보통 문화가
그 민족의 나라나 종교에 기반을 둔다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 경제와 문화의 흐름은
선진국과 후진국을 연결하는 초국적 개념을 가집니다
그것이 바로 문화적 세계화입니다
금융 시장의 통합이란 점에서
경제적 세계화는 모두 이해합니다
제 생각에 문화적 세계화란 한 사람의 출신을 얘기할 때
한 단어로 정의되지 않는 겁니다
가족이 전부 다른 나라 출신이라서
이모는 오데사에서 왔다거나 형제는 파키스탄 출신이라든지
모든 사람이 다섯 곳 정도 연관되었을 거고
그들은 이런 세계화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자신이 속한 곳을 찾으려 할 겁니다
나는 그저 구식 소녀예요
구식 사고방식을 가졌죠
어머니가 유년 시절을 보낸 집입니다
어머니는 매우 가난해서 이 집주인인 어머니의 삼촌이
비공식적으로 어머니를 입양해 자신의 방식으로 키우셨습니다
현재는 한 여가수의 소유지만 발길이 끊긴 지 꽤 오래됐죠
뒤에 볼링장이 있을 만큼 긴 체리 색 캐딜락
저는 복잡한 마음으로 집을 둘러봤습니다
과거의 거짓과 무의미한 열망을 모아놓은 것 같았습니다
현악 사중주와 폴리네시아 캐럴
어머니는 자라면서 영국 것은 뭐든 좋고
카리브의 것은 그렇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저는 저보다 피부색이 검은 사람을 무시하는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버지도 무시당하는 걸 봤습니다
어머니도 원하는 만큼 잘 살거나
남들에게 존경받고 칭찬받지 못했죠
자신감과 성취감이 부족한 집안이었던 겁니다
제가 17살쯤이었습니다
누나가 흑인 의사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당시 누나는 20대였고 어머니는 결사반대했습니다
3개월 후 누나는 심각한 신경 쇠약에 걸려
전기 충격 치료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완치되지 않았죠
제 어머니 세대에는
이 집을 포함한 모든 것이 영원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라진 것도 남은 것도 있었죠
사라진 건 식민지의 삶과 그에 동화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집, 부동산
그들이 쫓던 환상을 돌려 달라고 했죠
제가 다녔던 자메이카 학교는 달라진 점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역시 여기도 그 속은 달랐습니다
이들은 독립 시대의 아이들입니다
저와는 달리 식민 지배를 받지 않았죠
오늘날 자메이카는 독립을 되찾았습니다
저명인사였던 마이클 멘리는
총리가 되었습니다
저는 덩치가 작은 신입생이었고
당신은 6학년이 끝나가고 있었는데
만물의 영장이자
학교의 대표였죠
세상에나
어린 시절 자메이카에서 여러 음악을 듣고 자랐지만
저와 맞는 음악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현대 재즈를 듣고 이거다 싶었습니다
홀 가의 집
변화를 불러올 음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주류였기 때문이죠
현대 재즈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제가 바라는 현대적인 삶을 찾아 떠나
그것을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줬습니다
킹스턴에 살았을 때 여기에 왔던 기억이 납니다
가난했던 이 지역은 지금 더 가난해졌습니다
식민 지배는 끝났고
좌와 우의 독립 정부가 각자 해결 방안을 내세우며
권력을 다퉜습니다
국민은 이 모든 과정을 고스란히 겪어야 했죠
라스타파리를 믿는 사람들이 보면
여전히 고통과 억압을 받고 향락과 악덕이 가득했죠
그들에게 이곳은 바빌론과 같았습니다
제가 가장 동정이 갔던 게
어린 나이에 자메이카에서
옥스퍼드로 처음 유학 온 시절 얘기였어요
그 당시에 어땠는지 기억하시나요?
처음 영국의 문화를 접했을 때 어땠나요?
저는 다른 도시로 가고 싶었습니다
런던이나 뉴욕으로 가길 원했습니다
런던의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싶었죠
저는 검은 피부 탓에 가족과 겉돌았고
시대적 상황 때문에도 사회의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현실에 안주할 수 없었죠
저희 세대가 살던 사회 분위기는
타지로 나가는 걸 이상적으로 여겼습니다
작가나 지성인이든 뭔가 되려면
어떻게든 고향을 떠나야 했죠
역사적으로 서인도인은 이동하는 민족입니다
처음에는 노예로서 다른 나라로 수송됐죠
최근엔 시골에서 도시로
작은 섬에서 큰 섬으로
카리브에서 다른 나라로 이주하고 있습니다
서인도인은 고향보다 영국을 동경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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