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200 lines.
서 실장이에요
없다고 그래
다음 주에나 올라온다고 그래
전화가 아니라 왔어요
뭐야?
진도는 얼마나 나갔어요?
70퍼센트는 나갔죠?
절반도 못 나갔다
돌아버리겠구만 정말
도대체 그동안 뭐 하신 거예요, 예?
아니 멜로라는 게 장르 뻔하고
최대한 예쁘게 예쁘게만 그리면
그 좋은 머리로 서 실장이 직접 써라
이번에 확실히 깨달은 게 있는데
나 멜로 체질 아냐
쓰면서도 말이야 내가 그냥 닭살이 돋아 가지고
닭살 돋게 써 달라잖아요 닭살 돋게
형수님 빨리 짐 좀 꾸려 주세요
네
야
이거 몇 장 더 주라 이걸로 어떻게 일주일을 살아
회사에서 진행비 나올 텐데 무슨 돈이 필요해
저 그리고 서 실장님
일 끝나면 잔금 바로 나오죠?
안 그러면 우리 집 끝장이에요 부도라고요
무슨 놈의 여편네가 그냥 입만 열었다 하면 돈타령이야?
그럼 돈 좀 팍팍 벌어다 줘봐
나도 우아하게 살고 싶으니까
그리고 그 여관방에 텔레비전 치우세요
아침 7시 뉴스부터 마감 뉴스까지 꼬박꼬박 챙겨보는데
자기가 무슨 이 세상의 짐을 다 짊어진 것처럼
이 여편네가 정말
그만하세요
봤지?
이런 엿 같은 분위기에서
예쁜 멜로가 나오겠니?
그래 나 때문에 못 썼어
별 엿 같은 핑계를 다 대고 있네
그만하세요 그만
야, 서 실장
이 시나리오 말이야
이거 그냥 확 덮고서 다른 거 쓰면 안 될까?
농담이라도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누굴 죽이려고
죽이는 아이템이야
내가 한 달 만에 끝낼 자신도 있고
글쎄요 이거 먼저 끝내고요
뭔데요?
그러니까 연쇄 살인범 얘긴데
쉽게 말하면 '세븐' 같은 거야
거기다가 소셜한 걸 섞는 거지
'세븐' 죽이죠
우리나라 작가들은 그런 걸 못 쓰지
그 시나리오 쓴 놈 30억 벌었다더라
3억만 주라
내가 세븐, 에이트, 나인, 텐 네 편 써줄게
암튼 무슨 말을 못 한다니까
아무튼 이 영화는 호텔 방에서 시작해
한 여자아이가
이상한 냄새를 맡고 사내에게 걸어가지
그 여자아이가 시트를 걷으면
놈의 성기가 완전히 잘려져 있지
사라져 버리는 거야
스타트가 나쁘지 않네요
그래서요?
어떡할래? 시나리오 덮을 수 있겠어?
내가 그런 힘이 어딨어요
조심해
운전하면서 한눈 좀 팔지 마라
큰일 날 뻔했잖아
자꾸 덮자고 그러니깐 그러잖아요
그래서요? 다음엔 어떻게 되는데요?
안 가르쳐줘
더 조용한 방은 없는 거야?
낮엔 다 똑같아요
그래도 밤엔 여기가 좀 조용할 거예요
전요 회사로 그만 갈게요
응, 그래
이따가 저녁이나 같이하시죠
응, 그러자고
뭐 해?
감방에 TV 있는 거 봤습니까?
야, 야 창피하게 왜 이래?
내가 뭐 어린애냐? 알았어, 안 볼게
이거 약속 꼭 지키셔야 돼요
그래! 안 봐!
알았어요
그럼 있다가 저녁 때 봐요
어, 그래
나오셨어요?
내일부터요, 여관으로 직접 출근하랍니다
사장님이요
시나리오 가지고 오기 전엔 얼굴도 보기 싫대요
안 돼, 안 돼
나 누가 있으면 진도 안 나가
염려하지 마세요
쥐 죽은 듯이 있어 줄 테니까
배고프다 점심 걸렀더니
뭐 드실래요?
복 어때? 복 얼큰하게
첫날인데 진행비도 별로 없다고요
그냥 백반 해요
야, 첫날이니까 먹자
다 먹고 살자고 이러는 거 아니야
아이참 나
왜요?
죽은 자들은 모두 썩고 타락하고 비도덕적인 자들이지
사람들 사이엔 은근히
살인범에게 동조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그동안 범인은
절단해 온 인간들의 신체 조각 조각들을 모아서
포르말린 병에 보관해 놓고 있었지
그 조각들을 모아서
전신상을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였거든
마지막 그는 자기의 왼손을 자르지
자기 손을 왜 잘라요
일종의 자기반성인 거지
타락한 세상을 질타하는 방법으로
그 역시 타락한 방법을 쓴 거니까
그 조각품 위에 회칠을 하고 석고를 입혀서
미술전에 출품해
작품 이름을 '20세기'라고 이름 붙여서
20세기
영화 제목으로 '나의 20세기'
이거 어때요
그런 영화는 벌써 있어
죽이는 영화
공부 좀 해라
서 실장은 다 좋은데 너무 무식해
그게 문제야
범인은 20세기 마지막 날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서 모든 걸 밝히고
메시지를 남기는 거야
아니, 그러면 범인이 도대체 누구예요?
안 가르쳐줘
나 캐스팅 생각해 보려고 그러죠
아직도 감이 안 와?
이건 범인이 중요한 영화가 아니야
범인은 마지막 한 씬이면 충분해
이 얘기 이거 아무한테도 안 하셨죠?
왜?
이거요
무조건 저하고 하는 겁니다
예?
저도 이제 독립해야죠
하는 거 봐서
야, 근데 복 말고 뭐 다른 거 없냐?
아줌마
예
여기 밑반찬 좀 신경 좀 써주세요
최 작가
오랜만이야
응
요즘 멜로 쓴다며?
그게 자기 체질에 맞아?
재미없는 영화는 국적과 상관없이 용서하면 안 돼요
그게 제 원칙이에요
한국 영화는 밀어주려고 해도 짜증이 나서 말이에요
영화는 기본적으로 재미가 있어야 되잖아요
요즘 한국 영화 많이 좋아지고 있죠
어이 최 작가
한잔하고 가 오랜만인데
술은 여전하시네요 유 선생님
홍 기자도 만만치 않으신데
재미도 재미지만
예술 하는 친구들이 문제예요
자기들이 딴따라라는 걸 몰라요
딴따라라는 게
허 형 말대로
대중을 위로하는 거잖아요
근데 자꾸 대중을 가르치려 한단 말이죠
건방이죠
야, 유 평론가
근데 그 20자 평인가 뭔가 쓰는 애들 말이야
왜 20자 넘어가는 놈이 그렇게 많냐?
그런 기본 약속도 못 지키면서
남의 영화를 평할 수 있는 거야?
자넨 혼자 심각한 게 탈이야
그러니까 시나리오가 재미없지
근데 유 선생님은 늘 별이 짜신 것 같더라
다른 평론가보다 반 개씩은 더 짜요
내 딴엔 많이 주는 겁니다
이 바닥은 워낙 좁아서요
평하기도 힘들어요
자네는 자네 마누라한테도 별을 주고 그러나?
무슨 소리야?
마누라 얼굴은 별 두 개 반
젖퉁이는 별 세 개
그러면서 살아?
사랑하는 대상이라면 신중해야지
영화를 밥그릇으로 보니까
함부로 별을 주고 그러는 거 아냐?
천박한 짓이야 그런 짓 하지 마
이 자식이
그리고 당신
뭐 전천후 문화 평론하는 건 좋은데
말씀 좀 삼가쇼
영화판이 언제부터 이렇게 개판이 됐는지 모르겠어
문화 양아치들이 차고 넘쳐
개나 소나 함부로 별을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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