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ease info

사진의 얼굴 2025
A Commentary by club706
vd 붙박이 | 싱크 겹치는 구간 있음 | 수정: 싱크 전반적으로/자막 나누기/줄 바꿈, 맞춤법, 문장 부호 정리, 줄임말 풀어쓰기, 오탈자

Tags

other
Published on: 2026-03-18
Downloads: 33
Hearing Impaired: No
FPS: 29.97

Korean subtitle preview

The first 200 lines.

그날은 비가 내렸다

서울대학교 1965.4.19

한 무리의 대학생들이

고개를 떨군 채 걸어오고 있었다

손에는 책이나 우산을 접어 들고

비장하게 정면을 응시하며 걸어왔다

매우 장엄한 시위였다

그들은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젖은 얼굴로

침묵 속에서 거리를 걸으며 '무엇'을 말하고자 했다

학생들 옆으로 '헌병'이란 두 글자가 선명하게 박힌 군용 지프와

트럭에 철모를 쓴 병사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공권력의 억압에도 꺾이지 않는 열망이 폭발하던 나라

이것이 내가 보았던 1965년 대한민국의 얼굴이었다

시위대를 추격 중인 경찰 기동대 1965.4.19

일본 도쿄

구와바라 시세이(89세) 사진작가

최화자(81세) 구와바라 시세이 아내

1960년, 나는 도쿄 농업 대학을 졸업했지만

전공 분야를 계속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나와 '미나마타'와의 만남은 그해 5월 10일에 시작되었다

도쿄역을 저녁에 출발한 니시가고시마행 특급 열차는

요코하마를 지나 오다와라 부근을 달리고 있었다

나는 기차에서 지인이 사 준 주간지를 느릿느릿 꺼내어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직후 나의 전신을 뒤흔들어버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나마타병을 보라 가난한 어민의 숙명

주간 아사히 1960.5.15일 자

나는 열차 안에서 갑자기 누군가를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주간지가, 활자가 이처럼 큰 충격을 준 적은 없었다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

미나마타시 1960년

미나마타병 1956년 일본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에서 메틸수은이 포함된 조개와 어류를 먹은 주민들에게서 집단으로 발생

2021년까지 공식적으로 2,999명의 환자가 확인되었다

메틸수은 방류 공장 1960년

미나마타 시립병원

미나마타 시립병원을 찾았을 때

원장님이 제일 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진으로 과연 뭘 할 수 있느냐?

사실은 포토 저널리스트 사진가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미나마타에서 발생한 일을 사진전으로 발표하여

사진계에 데뷔하고 싶습니다

말을 마치고 이런 얘기로 원장님을 설득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지만

원장님은 이 지방 사투리로 '좋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처음 미나마타에 왔던 건 1960년 7월이었는데

환자들과 접촉하는 건

제가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대니까 말썽이 없었습니다

어머니와 가족 모두 생선을 먹었는데

태어난 첫아기가 태아성 미나마타병 환자였습니다

둘째부터는 괜찮았습니다

이후로 가족들은 첫째 딸이 독을 모두 흡수해서 몸이 나빠졌으니

보배라고 말했습니다 보물 같은 아이라고요

어부의 딸인 열 살 구미코 1966년

정직하게 말하면 환자인 그녀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싶지는 않았다

단순히 셔터를 누르기만 해도

움직이지 못하는 소녀는 찍힐 수밖에 없다

나는 미나마타의 사정을 잘 모르는 독자들이 책장을 넘기는 손길을

그 사진이 실린 페이지에서 멈추도록 만들고 싶었다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사진이 그런 효과가 높은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은 일회적인 효과에 지나지 않을 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할 수는 없다

피사체가 충격적이면 충격적일수록

오히려 힘을 뺀 사진이 역설적으로 더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

구미코가 보이지 않는 눈으로 천장의 종이학을 보고 있다 1996년

당시 언론 매체가 전혀 촬영하지 않아서

가무로 유미 구마모토 대학 특임 조교

그때 환자를 찍은 사진이 매우 귀중해졌습니다

당시에 취재를 거부하는 환자도 매우 많았다고 하는데

구와바라 씨는 어촌에서 민가에 들어가

함께 고기잡이도 가고 식사도 하고

친분을 쌓고 나서 카메라를 꺼냈다고 하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아키야마 데쓰야 전 요미우리 신문 사진부장

당시에 일본 대형 언론사도 마침 1964년 도쿄 올림픽 개최 전이어서

규슈의 외진 시골에서 벌어진 일에 주목하지 않았죠

그런데 빨리 주목하고 일본의 대형 언론사가 취재하기 전에

상당히 거기에 파고들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일본 사진 비평가 협회 신인상 수상 1963년

놀라운 신인이 등장했다! 1963년 당시 언론

도몬켄 사진상 수상 2014년

일본 시마네현 가노아시군 츠와노초

츠와노역 일본 시마네현 가노아시군

구와바라 시세이 사진 미술관

니카시마 이와오 쓰와노 전 면장

제가 처음에 면장으로 취임한 것이 1994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소위 포토 갤러리, 보도 사진가인 구와바라 시세이의

미술관을 설치하고 싶다고 하여

쓰와노의 역사, 문화

그리고 현재를 보고 알아주셨으면 하는 취지에서

구와바라 시세이 미술관을 건립했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사진 찍는 것을 정말 좋아했고

단순히 사진가가 된 것이 아니라 베트남을 비롯해서

혹독한 세계 각지의 현장을 찾아서 스스로 경험하고 공부하고 왔습니다

확실히 말해서 그는 우리 마을의 자랑입니다

구와바라 히로시(50세) 영화감독, 음악가

지금은 둘째가 여기를 지켜주고 있어서

안심하고 있습니다

집도 지켜주고 있지

저는 여기에서 1936년에 태어났고

고등학교까지 여기 살다가 도쿄로 갔어요

당시에 버스는 목탄, 숯을 때서 버스를 운행했습니다

저희는 어린아이여서 장난을 치다가 목탄 버스의 증기가 분출했어요

그게 눈에 닿아서

제 오른쪽 눈을 실명했던 걸 기억합니다

그래서 카메라로 볼 수 있는 건 왼쪽 눈입니다

제가 사진을 배운 건 중학생 때였어요

아버지가 카메라를 사 주셔서

중학교에서 2년 고등학교에서 3년

대학에서 4년하고 나서는 사진 찍는 기술은 체득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초점은 잘 맞췄어요

지금은 카메라가 자동으로 초점을 맞추지만

저는 눈으로 초점을 맞췄어요

초점은 누구보다도 잘 맞추고 나서

셔터를 누르는 것이 습관이었습니다

아카네 구와바라(32세) 번역가, 며느리

이거 처음 봤어?

그렇지? 내가 부엌에 있는 사진

놀랍지?

왜 이게 앨범에 안 들어 있었지?

앨범에 넣지 않고 갖고 있었어

이거 빨리 못 본 게 아쉽네

내가 콩을 맷돌에 갈고 있고 그걸 히로시가 보고 있어

이게 히로시야?

재미있네

이건 트랙터에 타고 있는 와타루와 히로시

1969년에 제가 자동차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때 한국의 고도 경제 성장

그 소재를 찍으러 저희 회사에 왔더라고요

제가 일어 통역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안내 브리핑을 하고 생산 라인도 안내하고 그랬는데

그때는 이 사람이 혼자 온 게 아니라

다른 사진작가들하고 같이 왔었어요

근데 거의 말도 없이 과묵하게 있었고

그런데 며칠 후에 또 한 번 찾아와서

사진을 잘못 찍은 게 있어서 또 한 번 찍고 싶다

그러면서 찍고 갔는데

그때 일요일에 치마저고리를 입은 한국 여성을 찍고 싶으니까

비원에서 모델을 해줄 수 있냐고

일본어를 참 잘한다고 생각했어요

미인이기도 해서

첫눈에 반했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요?

구와바라 시세이의 수첩 1969년

6/15 최화자 씨 New Korea Hotel Tea Room

6/15 최화자 씨 New Korea Hotel Tea Room 6/18 화자 씨 만남

6/19 화자 씨 전화번호

6/19 화자 씨 전화번호 6/21 화자 씨 만남

그러고 나서는 며칠 후에

자기가 취재를 다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간다고 하면서

회사로 그 전날 전화가 왔어요

저 내일 돌아가는데 오늘 좀 만나자고

그리고 회사 일 끝나고 저녁에 만났더니

저한테 프러포즈를 하는 거예요

결혼 1970.11.12

처음에 프러포즈를 받았던 게 1년 5개월 만에

실제로 결혼식 날짜까지도 다 편지상으로 정해져서

결혼식 날 4일 전에 한국에 들어와서 결혼식을 하고

그날로 일본으로 온 거죠

일본의 유명 사진작가가 우리나라 아가씨를 신부로 맞았는데 결혼식은 서울서 첫날밤은 동경서 '주간 여성' 1970년 11월호

그래서 그날 결혼식을 낮에 올리고 저녁에 와 보니까

아무것도 옮겨 놓은 게 없고

딱 이불 한 채만 덩그러니 택배가 방 한가운데 한 덩어리 있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이틀 후부터는 출장 가고 없어요

이틀 후부터 없어요

모르겠습니다

저는 나쁜 사람입니다

자기는 나쁜 사람이라는 말만

'상상과 순환' 구와바라 히로시 작품

집 안에 카메라가 많이 있는 집이라고 생각했어요

구와바라 히로시(50세) 차남, 영화감독, 음악가

카메라, 삼각대, 필름 사진 관련 책

아버지는 촬영 현장에 가거나

일본은 물론 해외에 돌아다니는 것이 일상이었고

집에 없는 건 괜찮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부모님 가정이라는 차원에서는

아버지로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취재 가면 두 달이고, 석 달이고 오지도 않고

옛날에 물론 전화하는 시대도 아니고

또 한곳에 정착해 있는 것이 아니니까 편지 왕래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 이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 채

그냥 두 달이고 석 달이고 지내야 돼요

너무나 힘들고

아무리 말을 해도 일체 들어주지 않고

그러다가 이제는 도저히 일본에서 못 살겠다

한국에 돌아가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고 한국에 갔어요

그래서 어머니하고 큰오빠한테

한국에 돌아오고 싶다고 말을 해야 되겠다 하고

결심을 하고 가거든요

가서 어머니 얼굴하고 큰오빠 얼굴을 보면 그 말이 절대 안 나와요

도저히 입이 안 떨어져서 말을 못 하고

'어, 구와바라가 생활비도 잘 갖다줘, 어머니'

그렇게 항상 말하면서 그렇게 지내다가 오거든요

나리타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높은 빌딩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제 마음이 막 어수선해진다고 할까

내가 이번에도 말을 못 하고 또 왔으니

이 험난한 세상에서 또다시 내가 살아야 된다

너 빨리 결정을 해라 결심을 해라 하고

이 높은 건물들이 차창에서 저한테 막 바싹바싹 재촉을 해오는 걸 느껴요

하코자키에 내리는 그 순간

'그래, 내가 다시 또 힘내서 살아야지' 결심을 하고

버스가 딱 스톱하면 그때부터 막 총총걸음으로 뛰면서

집에 와서 또 아이들 뒤치다꺼리하는 거죠

Comments

No comments yet. Be the first to leave one.

Keep it about this subtitle — sync, quality, typos.500 characters le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