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200 lines.
어쩌겠니 톤보
잘 안 써지는 날도 있는 거지
언젠가 술술 풀리는 날도 있겠지
응?
내일 새로운 일에 도전해
잘 해낼 수 있을까?
연애는 목숨을 건 사냥이다
원하는 상대를 쫓아가
말 또는 행동이라는 화살을 쏘는 것이다
상대의 집에 연하의 아내가 기다리고 있다는 현실도
자기 집에 연상의 남편이 기다리고 있다는 현실도
그 순간의 나츠코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믿을 수 있는 건 나 자신뿐
자신의 체력이 사냥감보다 못하다면
절대로 사냥감을 손에 넣을 수 없다
나츠코는 원하던 남자의 옷을 벗기고 그를 껴안았을 때
우월한 존재감을 느꼈다
이상입니다
소설가 아야미네 료코 선생 '한여름의 연회'로 보는 소설의 겉과 속
부끄럽습니다
이 소설은 제가 서른 살에 쓴 것이라
조금 유치합니다
저는 독자들 앞에 한 번도 나서 본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소설 뒤에 숨기를 원했습니다만
최근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소설보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에게
나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앞으로는 소설 뒤에 숨지 않을 겁니다
낭독용 교재를 이 책으로 해야만 했어?
베스트셀러니까 싫더라도 이해해 줘
저도 참 좋아하는 책이에요 여러 번 읽었어요
거봐 그렇다잖아!
옛날부터 작가님 팬입니다 뵙게 돼서 영광이에요
궁금한 거 있으면 안나 씨한테 말하면 돼
너를 모셔 온 덕분에 학교에 체면도 세우고, 나야 좋지
하지만 걱정은 된다
괜찮은 거지?
그럭저럭
새로 시작한 소설이 영 잘 풀리지가 않네
무리하지 마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소설이 태어나는 거야
료코
술은 절대로 안 돼
절대 안 된다는 그 말 절대적으로 싫은데
절대 싫어도
절대로 안 되는 건 절대 안 돼
이 책 읽어봤어? '이반 일리치의 죽음'
내일 읽을 거야 가져가지 마
그럼 '이끼루'는 기억나?
'이끼루'?
같이 봤잖아
영화 '이끼루'
그랬었나?
암 선고를 받은 주인공이
죽기 전에 주민들을 위해 뭔가 좋은 일을 해보고 싶어 하잖아
그래서 네가 선택한 게 강의하는 거다?
학생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
료코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줘
갈증이 나서 힘들어
아, 차! 이 정신머리하고는...
선생님 여기는 '찬해'라고
지금은 휴학했지만 지난 학기까지는 같이 공부했어요
이분은 대학원 초빙 교수로 오신 소설가 아야미네 료코 선생님
잘 부탁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소찬해라고 합니다
소...
찬해?
찬해는 한국에서 유학 왔어
이 집에서 제일 맛있는 걸로 부탁해요
여러분! 오늘은 내가 쏩니다!
괜찮겠어?
료코, 료코
괜찮아
- 그만 마셔 - 괜찮다니까
오늘 같은 날은 좀 마셔줘야지
한 잔만 하기로 했잖아
- 괜찮다고 - 그만 마셔!
선생님 부탁이 있습니다
사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 작가님은 사인 절대 안 하기로 유명한 분이야
누가 그래? 책 주세요
저기요! 안에 아무도 없나요?
실례합니다
아무도 없나요?
잠시만요
뭡니까?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
분명 여기 있을 거야 꼭 찾아야 해
만년필을 찾고 있어
만년필이요?
아까 제가 다 청소했는데요 만년필은 없었어요
어디 있니? 분명 여기 어디 있을 텐데...
그 만년필로 소설을 계속 써 왔어
난 그거 없이는 글을 쓸 수가 없어
꼭 찾아야 해
다른 것으로는 어색해서 잘 쓸 수가 없거든
저기요, 제가 일본에 살면서 늘 놀라는 게 있는데요
물건을 잃어버려도 꼭 다시 돌아오더라고요
그래 일본은 그런 곳이야
좀 쉬고 계세요 제가 찾아볼게요
만년필이라
찬해 일어나!
웬 늦잠이야?
그게...
그러니까 만년필이...
만년필
새벽에 갑자기
어?
그거 형 거 아니죠?
응, 아냐
못 살아! 이거 어제 온 작가님 거라고요
그래?
뭐야?
뭐가 뭐예요
뭐라니
뭐 하자는 겁니까?
뭐야!
아침부터 뭐야
비싸 보여서 잘 보관해 뒀던 거야
백만 엔짜리래요
백만 엔?
마츠무라
문패에 '마츠무라'라고 쓰여 있어서 이 집이 아닌 줄 알았어요
이혼하면서 원래 내 성을 찾았어
앞으로는 아야미네 료코가 아닌 마츠무라 료코로 책을 낼 거야
얘는 이름이 뭐예요?
톤보! 잘 어울리지?
톤보(잠자리)라...
아!
찾았어요
'만년필 군' 돌아와 줘서 고마워
'만년필 군'이요?
몰랐어?
네
이름이...
소찬해입니다
소찬해 군은
지금 '의자 양'에 앉아 있는데 그것도 몰랐어요?
제가 그랬나요?
소찬해 군 지금 시간 있어요?
톤보! 야!
톤보, 톤보!
야, 톤보!
이름이 뭐예요?
톤보예요
톤보?
- 톤보 짱! - 톤보
톤보가 참 좋아하네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도 운동이 됐네요
찬해 군!
갑자기 산책 부탁해서 당황했지요?
아닙니다
진짜?
앞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톤보 산책 좀 부탁해도 될까?
괜찮아?
아르바이트해 줄 사람을 찾고 있거든
톤보가 찬해 군을 좋아하네
생각해 볼게요
그럼 이만
톤보, 안녕
손님 어서 오세요
찬해 왜 이리 늦었어?
만년필 씨...
진짜 웃겼어요
뭔가 횡설수설하는 게 사람이 좀 이상해요
야, 아줌마 킬러
잘 해봐
그만 좀 하시죠
팽이버섯이랑 아스파라거스는?
까먹었다
야...
세 명이요
어서 오십시오
어? 톤보다, 톤보!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야, 톤보 씻어야지
이리 와 이리 오라니까
톤보는 어릴 때부터 샤워를 싫어했어
됐어 기분 좋지?
쌍둥이 동생들이 있어요 나이 차이가 좀 있는...
걔들도 샤워 싫어했어요
와! 서점 같네요
잘 팔리지 않는 책만 있는 서점
이런 서재라니 감동이네요
정리가 잘 되어 있네요
가로는 연대별 세로는 작가별
어떤 관점에서 보면 잘 분류된 거 같지만
참 답답한 분류야
이 세계엔 우연이라는 게 별로 없잖아
필요한 걸 찾을 때는 좋지만
이 분류 좌표 안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게
참 슬퍼지더군
나는 지금 우연을 기대하지만
머릿속에는
이쯤이 마쓰모토 세이초의 코너겠구나
예상을 하지
그리고 눈을 떠 보면
No comments yet. Be the first to leave 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