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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ease Call Me Claudio 2024
A Commentary by club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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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on: 202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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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rst 200 lines.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순간이 하나 있어요

아버지가 병을 앓고 난 뒤 처음으로 열린 콘서트였죠

베를린이었고 그는 행복해 보였어요

베르디: 레퀴엠 미사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 2000년

그날 연주된 베르디의 레퀴엠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공연이 끝난 뒤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어요

아버지가 의사이신데 그러시더군요

이제 아바도에게 작별 인사를 해야겠구나

그래서 왜냐고 물었죠

아바도 얼굴에 죽음의 기운이 느껴졌거든

하지만 저는 아바도가 반드시 다시 회복할 거라고 말했고

다행히도 몇 년을 더 버텼습니다

다시 지휘대에 섰을 때 연주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여러분은 제게 최고의 치료제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음악을 연주하면서

몸과 마음이 회복됐어요

그 진심은 연주에도 그대로 드러났죠

저는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었습니다

클라우디오로 불러주세요

선구자 클라우디오 아바도

살다 보면 믿음이 생기는 순간들이 있어요

한 번 마음을 열면 전부를 믿고 몸을 맡겨요

그 믿음은 저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줍니다

산도 움직일 수 있을 만큼요

그리고 때로는 기적도 만들어 냅니다

필하모닉 콘서트홀

비제: 카르멘 전주곡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 1997년

"에마뉘엘 파위 베를린 필하모닉 수석 플루트 연주자"

제가 아바도를 처음 만난 건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석 플루트 오디션을 볼 때였습니다

오디션 직후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고

제가 이탈리아에서 자란 덕분에

이탈리아어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금방 가까워졌어요

아바도 그리고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작업은

그 시절 제게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아바도는 새롭게 부임한 상임 지휘자였고

당시 오케스트라는

카라얀 시절의 연주 스타일에 여전히 깊이 물들어 있었죠

여전히 카라얀 시대의 색채에

깊이 물든 오케스트라와 마주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전후 세대를 새로운 인재들로 하나씩 교체해 나갔습니다

젊은 연주자들인 우리에게는 그 자체가 큰 신뢰의 표현이었죠

자신의 오케스트라에 초대해 준 것이니까요

그 경험이 우리를 음악의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베를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1989년 11월 베를린 도착"

여기서 잘 보입니다

장벽이 무너졌을 때

동베를린 사람들이 저쪽에서 국경을 넘어왔어요

최고의 음악가들과

함께 음악을 할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그리고 지금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게 되어 영광스럽고 감격스럽습니다

1989년 아바도는 놀라운 결과로

지휘자 선출 투표에서 당선되었습니다

"카이 뤼어스-카이저 음악 평론가"

카라얀이 사임하고 곧 세상을 떠난 직후였습니다

건강 문제와 갈등으로 지휘자 자리에서 물러났죠

카라얀은 복잡한 인물이었지만 매우 치밀하고

지휘봉 테크닉 또한 탁월했습니다

그래서 따라야 할 기준들이 분명히 있었죠

그 기준은 정말 높았죠

하지만 아바도는 변화의 길을 조용히 계속 걸어갔습니다

분위기를 점점 유연하게 만들었죠

엄격한 환경에 익숙했던 오케스트라에게는

낯선 변화였을 겁니다

다들 일어서네요!

말러 시대에는 그게 좋았지만 지금은 좀 과하죠

조금만 더 높이요

악기만요

여러분은 앉아계세요

저는 1992년 2월에 이곳에 왔고

"알브레히트 마이어 베를린 필하모닉 수석 오보에 연주자"

도착하자마자 아바도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게 무척 반가웠어요

그에 대해 아는 건 거의 없었고

1989년에 선출됐다는 소식만 들었었거든요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이 그를 마에스트로라고 불렀습니다

어떤 분들은 마에스트리시모라고까지 불렀죠

그런 호칭을 놓지 못하는 분위기가

당시에는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바도가 모두에게 말했어요

저는 마에스트로가 아닙니다 클라우디오라고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첫 리허설 때 저는 아직 수습 기간이 남아 있었고

그저 보조 연주자일 뿐이었죠

손톱 밑의 때보다도 못한 존재랄까요

그런데 웃긴 건

그때 뭔가를 여쭤보려고 하다가

마에스트로나 아바도 선생님 대신에

클라우디오라고 부른 겁니다

그 반응이 정말 대단했어요

오케스트라 단원 전원이 고개를 돌려 저를 쳐다봤죠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쟤 대체 뭐야? 감히 클라우디오라고 불러?

누가 쟤더러 그렇게 불러도 된다고 한 거지?

아바도와 함께하던 시절 해마다 열 명 안팎의

신규 연주자들이 오케스트라에 합류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경력 있는 단원들과 신입 연주자들이 함께

실내악을 연주할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젊은 연주자들을 오케스트라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일은

모든 이에게 매우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카라얀 세대에게도 아바도 본인에게도 그랬죠

스트라빈스키: 불새, 피날레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 1999년

아버지에게는 경력의 정점이었습니다

그 이상 바랄 수 없는 명예였죠

"알레산드라 아바도 딸"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셈이었습니다

어쨌든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하는 건

모든 지휘자의 꿈이니까요

저희 아버지에게는 말 그대로 대관식 같은 순간이었죠

완벽한 대관식이었습니다

오케스트라는 완전히 새로워졌습니다

열정과 기쁨이 고스란히 느껴졌죠

새로 합류한 젊은 연주자들 가운데는

예전 아버지가 직접 창단했던

유스 오케스트라 출신들도 있었습니다

"다니엘레 아바도 아들"

아버지와 단원들 사이에는 강한 유대감이 있었습니다

사랑과 신뢰가 바탕이었죠

그건 연주에도 그대로 드러났고 귀로도 느껴졌습니다

말러: 교향곡 9번 살라 산타 루치아, 로마 2004년

구스타프 말러 유스 오케스트라

지휘자에게 있어 유스 오케스트라나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 같은 독립 앙상블은

그야말로 생명의 묘약과 같습니다

"안드레아 지첸슈만 베를린 필하모닉 단장"

왜냐하면 이들은 지휘자가 전하는 모든 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배우려는 열의로 가득하니까요

그런 환경에서는 일상의 짐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습니다

지휘자가 마주해야 하는 수많은 회의와 대화

요즘 음악 감독이 감당해야 하는 온갖 일들

언론 인터뷰부터 로비 활동까지 그 모든 것으로부터요

그 모든 걸 잠시 내려놓고

순수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건

새로운 활력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이죠

정말 멋진 경험일 겁니다

젊은 연주자들과는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어요

대형 오케스트라에서는 쉽지 않은 일들이죠

젊은이들에게는 억누를 수 없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따라와 주죠

1970년대 유럽 연합 유스 오케스트라의 창단은

유스 오케스트라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

구스타프 말러 유스 오케스트라

또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잇따라 창단되었죠

구스타프 말러 유스 오케스트라 파리 리허설

제가 아바도를 처음 만난 건 1994년이었습니다

구스타프 말러 유스 오케스트라에 참여했을 때였죠

인턴십에 지원해 합격했고

첫 리허설 전에 아바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존경심 가득한 마음으로 만났죠

그런데 호텔에서 리허설장으로 걸어가던 중

저에게 다가와

가족은 어떻고 어떤 음악에 관심 있는지를

정말 뜻밖이었어요

놀라울 정도로 따뜻하고 열린 마음을 지닌 사람이었어요

저는 아바도를 토리노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제 고향이죠

"안토넬로 마나코르다 바이올리니스트, 지휘자"

그게 아마 1993년쯤이었을 거예요

렌조 피아노가 새 콘서트홀을 도시 한복판에 짓고 있었고

아바도도 그 일에 관여하고 있었죠

공연장 완공 전 음향 테스트가 필요했기에

저는 바흐의 사라방드를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무심코 객석을 내려다봤는데

그 자리에 아바도가 있었습니다

클라우디오는 제게 다가왔고...

저는 클라우디오라고 부릅니다

그렇게 불러달라고 했거든요

아바도는 제게 와서 정말 잘 들었습니다라고 말했죠

말수가 적은 분이라 짧게 덧붙였죠

혹시 시간 괜찮고 생각 있다면

다음 여름에 구스타프 말러 유스 오케스트라에서

악장으로 함께할 생각 있냐고 물어왔어요

그리고 모든 걸 총괄하던

프란체스카 카메라나가 전화를 했죠

이건 절대 놓치면 안 되는 기회라고요

저는 이렇게 말했어요

'전 석사 과정 중이라서요'

그러자 그녀가 말했어요 뭐라고?

'아바도에게 그런 제안을 받는 게'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안 돼요 꼭 가셔야 해요'

'그러지 말고 내년 여름에 그 자리 맡아요'

저는 프란체스카 카메라나에게 지금도 매일 감사하고 있어요

불행히도 그녀는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정말 저를 강하게 밀어줬고

그 여름에 그곳에 간 덕분에 제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죠

갑자기 저는 구스타프 말러 유스 오케스트라에서

수석 바이올린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오케스트라 연주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지 압도당했고

그보다 더한 건 아바도와 함께 연주했다는 사실이었죠

그 경험을 통해 저는 두 가지를 알게 됐는데

첫째는 오케스트라는 거대한 현악 4중주와 같다는 것

실내악은 원래 제가 무척 좋아하던 분야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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