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200 lines.
이분은 제 할아버지 줄리어스 로젠버그고
이건 할아버지가
할머니인 에설 로젠버그와 함께 찍은 사진이에요
제 아버지와 삼촌이
각각 10살과 6살쯤일 때
두 분은 전기의자에서 처형되셨어요
두 분은 원자 폭탄 기밀을 훔친 혐의를 받았어요
아빠한테 물어보고 싶어요
사람들이 왜 원자 폭탄 기밀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훔쳤다고 생각했는지 왜 그런 혐의를 씌웠는지요
그 일은 말이지
미국 정부가
네 할머니랑 할아버지한테
여러 사람들에 관해 거짓말하라고 시켰어
정부가 싫어하는 사람들을 감옥에 보내려고
그런데 두 분은 거부하셨지
그랬다면 다른 사람들이 죽을 테니까
우리 부모님을 죽인 사람들에게
이 말을 하고 싶어요
당신들은 25년 전에 두 사람을 죽였지만
우리의 투쟁은 꺾지 못했어
우리는 여전히 여기 있고 여전히 싸우고 있으며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뜻을 모으고 있지
로이 콘은 사실상 10대일 때
줄리어스와 에설 로젠버그를 전기의자로 보냈습니다
"로이 콘"
로젠버그 부부가 처형된 지 30년이 지났는데
단 하루라도 그 일로 잠을 못 이룬 날이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배리
부부는 배심원단에 의해 유죄 평결까지 받았으니
사형 판결 및 집행이 정당했다고 확신합니다
여기 경찰 있습니까?
제가 뭐라고 해야 할까요?
신중하지 못했다고요? 애초에 그랬다고 안 했어요
비켜요
어니, 비켜
저는 늘 솔직하고 정직하게 행동했습니다
절대 위선자가 아니죠
우리는 자유세계가 냉전에서 승리하고
진실을 통해 이 싸움에서 이길 거로 확신합니다
저는 로젠버그 사건부터 매카시 시절까지
늘 강경한 태도를 보여 왔습니다
저는 히틀러와 나치즘 그리고 공산주의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도덕적 판단에 기반한
제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데
그 판단은 오직 제 몫이죠
저는 저와 다른 사람을 판단할 권리가 있고
타인에게도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저를 비난하고 싶다면 그건 그 사람의 권리이니
저는 신경 안 씁니다
국가의 이익이 뭔지 보이고 군대를 조롱하겠다고도 하셨죠
제가 그랬다고요?
책에 나옵니다
다른 책 좀 읽으시죠
제가 깨달은 인생의 교훈은
실행할 생각이 없다면 협박하지 말라는 겁니다
불한당, 겁쟁이, 희생자 로이 콘 이야기
저는 진실만 말합니다
선서 아래 반복 못 할 말은 입에 올리지 않죠
"로이 콘, 1981년 4월 16일" 저는 1980년에
"1981년 4월 28일" '플레이보이' 잡지사를 찾아가서
로이 콘을 인터뷰하겠다고 했습니다
"피터 맨소 작가, 언론인"
마이크 테스트
"1981년 5월 4일, 1/2" 로이 콘 인터뷰, 피터 맨소
잠깐 인터뷰 쉴까요?
얘기 많이 했죠?
"1981년 5월 4일, 2/2" 거의 다 됐습니다
저는 뉴욕에 있는 그의 로펌에 전화해서
메시지를 남겼는데 5분도 안 돼서 전화가 왔죠
로이 콘은 바로 그랬죠
'재밌겠군요 언제 만나서 얘기할까요?'
뉴욕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쯤 걸리는
노스그리니치에 있는 그의 집에서 녹음했습니다
부유층이 수년간 당신을 찾았던 건
무조건 승소하는 해결사로 정평이 나서일 텐데
매카시에게서 배웠다는
'아킬레스건 전략' 덕분입니까?
매카시에게서 배웠다기보다는
로젠버그 재판과 미국 지방 검찰청 근무 시절부터
그 전략을 터득했습니다
그때, 법은 본질적으로 승패가 갈리는
대립 구조라는 것을 깨달았는데
저는 지는 게 싫어서
무조건 이기고자 철저히 준비하고
치열히 싸워서 이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인터뷰하면서 로이에 관한 제 편견이
틀렸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습니다
로이는 악한 사람이지만 단순히 '악하다'로는
그 사람의 다양한 면모를 다 설명할 수 없었죠
그는 명석하고 도전적이었는데
제가 가장 매력을 느낀 건
법을 무시하는 그의 광기였어요
저는 제가 이단아라고 생각합니다
제 고객 명단도 꽤 별나죠
대부분 여론은 저를 '마피아 변호인'으로 보기보다는
'스튜디오 54 변호인'
'반공주의 변호인' '대교구 변호인'
'도널드 트럼프의 친구이자 변호인'
'뉴욕 양키스 조지 스타인브레너의 절친'
'여러 하원 및 상원 의원 그리고 판사들의 친구'로 보죠
누군가 미국 원자 폭탄 기밀을 러시아에 넘겼습니다
전 세계가 알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죠
연방 정부는 그 책임을 뉴욕 출신 부부
줄리어스와 에설 로젠버그에게 돌렸습니다
제 부모님은 대공황 시기에 자랐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세입자와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우던 시기라서
부모님도 거기에 동조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미국은 소련과 동맹 관계였고
공산주의와 미국식 가치가 공존해서
소련의 생존을 지지하는 건
정치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재판에서 소련을 좋아한다고 강하게 말했습니다
제 동족인 유대인 600만 명을 죽인
히틀러라는 괴물을 무너뜨린 나라였으니까요
제 아이들은 어릴 때 코프먼 판사가 조부모님에게
사형을 선고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데이비드 그린글래스는
로스앨러모스에서 기계공이었던 제 외삼촌으로
줄리어스와 에설이
소련 간첩으로 포섭하려 했다고 주장했는데
그때 로이 콘이 개입했습니다
그는 데이비드에게 어떻게 증언할지 가르치고
재판에서 직접 심문했습니다
그 둘이 연합해서 제 부모님은 유죄 판결을 받고
결국은 처형됐죠
어릴 때도 로이 콘이 누군지 알고 계셨나요?
"아이비 미러폴 로젠버그의 손녀"
몰랐지, 1955년에 그 판결에 관한 책을 읽었어
"마이클 미러폴 로젠버그의 아들"
그 책에서 로이 콘을 언급하는데
그때는 매카시 때문에 이미 들은 적이 있었지
그때 몇 살이었어요?
1955년이었으니까 12살이었지
12살짜리가 읽기 힘든 책일 텐데
제대로 이해하진 못했지만 매카시에 관한 방송을 봐서
로이 콘이라는 사람을 확실히 아는 계기가 됐지
매카시가 나쁜 사람이라는 건 알았지만
자세한 건 몰랐어
저는 대학과 로스쿨을 졸업했는데
3년 4개월 만에 두 학위를 모두 취득했습니다
그러고 미국 지방 검찰청에 들어갔는데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어린애였죠
내부 보안과 위조 사건 마약 사건들을 다뤘는데
덕분에 제 이름을 어느 정도 알렸죠
데이비드 그린글래스를 심문한 것도 저였습니다
그때 제 나이는 스물셋이었는데
제가 사건을 주도했다고 볼 수 있죠
코프먼 판사가 원자 폭탄 간첩 사건에서 내린
사형 판결은 매우 강력한 억제 효과를 냈으니
미국 반공 측면에서 꽤 성공적이었다고 봅니다
로이 콘은 로젠버그 부부를
유죄 및 사형 판결로 이끈 인물로 알려졌는데
"앨런 더쇼비츠, 변호사" 그는 그것을 발판 삼아
자신의 명성을 굳건히 했죠
1953년 워싱턴 DC
저는 상원 조사 위원회의 수석 법률 고문이 되었는데
매카시 상원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을 때죠
정부 기관들은 보안상의 위험을 은폐하고
그런 사람들을 민감한 자리에 두었는데
그러한 은폐를 드러내는 게 우리 임무였습니다
로이는 어디서든 분위기를 휘어잡고
가장 남자답고 거칠게 행동하려 했는데
"데이비드 마커스 사촌, 언론인"
그때는 공산주의자를 몰아붙이면 그래 보였죠
이해하지 못하신 것 같은데 이 사람을 아십니까?
사진을 보고 아는 사람인지 똑바로 말해 보십시오
단순한 질문인데 저 사람은 공산주의자입니까?
그렇게 진술하시니 제가 곤란스럽군요
똑바로 진술하십시오
방금 진술을 재판 기록에 정식으로...
매카시는 공산주의에 관해 제대로 아는 게 없었지만
로이 콘은
그를 계속 밀어붙이면서 자기 영향력을 행사했죠
그는 매카시의 자리를 뺏어서 중심에 서기보다는
뒤에서 권력자를 조종하는 사람이 되길 바랐죠
유대인이자 뉴욕 출신 민주당 당원인 제가
정치적인 야망을 위해
매카시의 법률 고문이 되는 건 최후의 수단이었습니다
제 정치적 야망에 따른 선택이었죠
더 많은 일을 하려고 그랬는데
지금도 잘한 선택이었다고 봐요
로이는 수많은 사람에게 영웅 대접을 받았습니다
특히 저처럼
"타키 테오도라코풀로스 언론인"
공산주의를 직접 겪은 이들에겐 더욱 그랬어요
저에게 공산주의는 그 어떤 것보다 끔찍했죠
우리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을 위협하는 존재가
바로 공산주의와 공산주의자였는데
로이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랐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시대에 자라면 어떨지 상상해 보세요
전 세계에서 미국만 핵무기 보유국이 아닐 때
"토니 쿠슈너 각본 작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 공포심이 얼마나 대단했겠어요?
공산당은 정치 정당이 아닙니다
공산당은 범죄 조직이죠
무력과 폭력으로 미국 정부를 전복하는 게 그들의 목표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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