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n Margiela: In His Own Words

Martin Margiela: In His Own W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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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n Margiela In His Own Words 2019 1080p AMZN WEB-DL DDP2 0 H 264-R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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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rst 200 lines.

2008년 9월 29일 파리에서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 2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쇼가 있던 당일 저녁, 마르탱 마르지엘라는 영원히 패션계를 떠났다

패션계에 있어 진정한 변화였습니다

마르지엘라는 패션계에서의 마지막 혁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쇼, 구성 방식, 옷과 내포된 의미 모두 시대를 앞선 방식이었습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는 지난 30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 중 한 명임이 분명합니다

그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그랬기 때문에 즐거웠죠

분명 그는 19세기 후반부터 있었던 모든 디자이너 중 탑 텐에 꼽힙니다

분명 그의 옷과 스타일이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대체 누구인지 궁금하도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점도 놀라웠죠

누가 그의 정체를 드러내게 할지 궁금해하기도 했죠

하지만 드러내지 않았죠 자신을 보여주지 않았어요

그 점이 아주 강렬했죠

얼굴을 노출하지 않는 건 아주 영리한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략은 아니었을 겁니다

엄청난 신비로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처음에는, 끝까지 대중에게서 숨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순간이 되면, '바로 내가 마르지엘라야'라고 말할 줄 알았죠

그런데 끝내 말하지 않았죠!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마지막 쇼가 끝난 후 10년이 지났나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스튜디오

유명인이 되는 건 생각만으로도 싫습니다

저에게 익명성은 아주 중요하고 다른 사람들과 같다는 균형감을 줍니다

저는 항상 제 이름이 얼굴이 아닌

제가 만든 제품과 연결되기를 바랐습니다

80년대는 부와 쾌락에 탐닉한 시대였습니다

육감적이고 허리가 잘록한 매우 화려한 패션이었죠

티에리 뮈글러 몬타나 등이 그랬죠

패션쇼는 60-75분 동안 진행되는 엄청난 행사였죠

그리고 90년대 초반에 들어섰고 더욱 심사숙고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처음에 우린 생태계를 진정한 문제로 생각했고

경제 위기도 찾아왔죠

갑자기 대중은 정직함을 원했죠

사람들은 염색하지 않은 옷을 비롯해

흰색이나 표백하지 않은 옷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마르지엘라의 철학에 적합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저의 첫 번째 주제는

쿠튀르 아틀리에에서의 초현실적인 눈이었습니다

그게 봄 여름 컬렉션이었고

물론 초현실주의로부터 영감을 받았습니다

베일에 싸인 얼굴이 있었죠

패션의 역사와 장신구에 관심이 많아서

'자보'라고 불리는 장신구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그때는 옷의 어깨를 넓게 만드는 게 유행이라

어깨 패드를 사용하고 싶었습니다

작은 어깨 패드를 목에 좀 더 가까이 넣어

진짜 어깨는 자연스럽게 바깥으로 나오도록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죠

그게 바로 제가 만든 첫 번째 재킷이 되었습니다

그 시대엔 모든 게 짧았지만 저는 짧은 옷은 원치 않았어요

그래서 발목 길이의 치마를 만들어 뒤쪽에 큰 절개를 넣었죠

아마도 다섯 시즌 이후에요

제게 있어, 실루엣에서 가장 중요한 디테일 두 가지는 어깨와 신발입니다

그 사이의 모든 것은 채워 넣을 뿐이죠

어깨는 특정한 태도를 보여주고 신발은 움직임을 결정하죠

그리고 실루엣이 특정한 방식으로 움직일 때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신발을 만들고 싶을 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요

약간 미쳐버릴 것 같죠

도쿄에 처음 방문했던 날이 떠오르네요

길거리에서 면으로 된 플랫 타비 신발을 신고 있는 노동자를 보았어요

'부드러운 타비 신발을 하이힐로 만들면 안 될 게 뭐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아이디어가 나온 거죠

1982년 파리 콤데가르송 쇼

사무라이 사이에서 유일한 여성인 레이 가와쿠보를 통해

대중은 극단을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프랑스 패션의 제국주의에 대해서

거의 반항하는 자세를 취했죠

이 전에 열망했던 모든 것은 다 사라졌고

과거가 되었습니다

미래는 이것이었습니다

쇼룸의 연출, 매장, 카탈로그 모두 한 번도 본 적 없는 형태였고

모델의 메이크업도 특별한 방식이었죠

워킹도 특별했어요

그 부분이 아주 강력했던 것 같아요

1987년 8월, 제니 메이렌스와 마르탱 마르지엘라는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를 설립했다

브뤼셀에 있는 멋진 샵에서 제니를 만나 금세 가까워졌죠

서로 미적 감각이 잘 통했어요

파리, 1989

우리 둘 다 일본 디자이너에 대한 엄청난 열망이 있었죠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쇼룸

그래서 우린 함께 모험을 떠날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생각해 왔던 극단적인 패션을 보여주는 일은 우주처럼 막연했지만

일단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색을 입혀야 했죠

80년대 후반 대부분의 쇼룸과 매장은

회색의 콘크리트로 되어있었고 검은색 가구를 놓았죠

그래서 어떻게 차별화할지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색을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그건 흰색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예산이 없어서

거리나 구세군에서 버려진 가구를 찾았습니다

디자인이 흥미로우면 페인트칠을 하거나

흰색 면직물로 덮었죠

그들은 모든 걸 흰색으로 페인트칠할 거라고 했고

저는 신선함이 필요하니 좋을 것 같다고 했죠

모든 걸 흰색으로 칠한다고 하면 정말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죠

전화기, TV, 책상, 벽을 비롯하여 모든 걸 흰색으로 칠하거나

흰 면직물로 덮었습니다

그게 그들의 방식이었죠

실제로도 정말 멋졌죠

내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흰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아름다웠죠

마르지엘라의 유니폼이 된 흰색 블라우스는

하이패션 하우스에서 흰 블라우스를 입은 모델 사진을 보고 영감을 얻었죠

우리는 매장에 가서 라벨을 보는 시대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사람들은 옷을 붙잡고는 '이거 그 디자이너 거잖아!'라고 말하곤 했죠

전 그런 사고방식이 정말 싫었습니다

4개의 스티치뿐인 텅 빈 라벨이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 라고 불리기까지

몇 년이 걸렸죠

몇 년간, 마르탱의 옷을 입으면 누군가 다가와 등을 긁어보며

등에 뭐가 묻었다고 말을 걸곤 했죠

그럼 '아뇨, 원래 그런 겁니다 라벨 스티치죠'

'마르탱 마르지엘라 옷이에요' 라고 답하곤 했어요

아무도 몰랐죠

그 후에는 오히려 이 4개의 스티치가 옷을 알아보는 단서가 되었습니다

멋졌습니다

하지만 처음에 이 스티치는 떼고 싶어 했던 것에 불과했어요

저는 패션쇼를 극장에서 꼭 해보고 싶었습니다

'카페 드 라 가르' 라는 곳이었는데

그때도 여전히 70년대 느낌을 간직하고 있었죠

극장 주인은 '패션? 못할 게 뭐야?'라고 했고 저는 '네, 처음 여는 쇼에요'라고 답했죠

그는 잘 해내면 유명해질 거라고 하더군요

'어떻게요?' 라고 묻자

'제라르 드파르디유나 미우미우처럼 여기에서 시작한 유명인들이 있지'라고 말했고

우린 '좋아요 그럼 해봅시다!'라고 했죠

1988년 10월 23일 봄 여름 89

옷을 입은 모델에게 처음 베일을 씌웠을 때

느낌이 왔습니다

얼굴을 가린 채, 옷과 옷의 움직임만이 있는 게 너무 좋았죠

뭔가를 이루려고 너무 오랫동안 일을 하면

사람들이 봐주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저는 모델이 백스테이지를 떠나기 전

빨간 페인트를 밟고 가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저의 집착이었던 거죠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있었는데 영국 보그 잡지였던 것 같습니다

'저와 함께 가시죠'

'제 예전 어시스턴트가 첫 번째 패션쇼를 열어요'

'곧 시작하는데 놓치고 싶지 않아요!'라고 했죠

그리곤 그 기자를 데리고 갔습니다

잘할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잘할 줄은 몰랐죠

우린 그가 만든 모든 옷을 원했습니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옷 모두를요

아름다울 뿐 아니라 색다르고 현대적이기까지 하죠

마르탱의 옷은 다른 옷을 유행에 뒤처져 보이게 했죠

완전히 충격적이었죠

모델이 마스크를 쓰고 나오는 것부터

실루엣, 신발까지 모두요

그런 건 본 적이 없었죠

저는 아방가르드라는 단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패션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엣지가 있었죠

앤디 워홀이 처음 나왔을 때와 같았던 것 같아요

갑자기 훅! 나타나서는 예술계를 다방면으로 바꾸었죠

1989년 3월 16일 가을 겨울 89 90

모두 마르탱 마르지엘라에 대해 엄청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작업은 매우 강렬했고

그 시대 것과는 차별화된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눈을 뗄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죠 이유는 모르겠어요

그때의 전 아주 젊었고 패션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아주 매력적인 게 있었죠

촬영 장소를 찾고 있었어요 아마도 i-D 잡지 촬영이었던 것 같아요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옷을 촬영하기 위한 특별한 어딘가요

그래서 저는 제니와 마르탱을 그곳에 데려갔습니다

둘은 그곳을 걷더니 '여기에서 쇼를 해야겠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전...

'쇼를? 여기에서?' 라고 되물었죠

왜냐면, 그 당시 쇼는 루브르의 사각 안뜰이나

루브르에서 5블록 반경 내에서 했기 때문이죠

보통 19구나 20구 같이 외진 곳에서는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야외였습니다

테란 바그라고 불리는 놀이터가 있는 버려진 땅이었어요

1989년 10월 19일 봄 여름 90

정말 아름다운 쇼였어요 완전히 압도당했죠

사람들이 차나 리무진을 타고 오고 있었습니다

약간 겁먹은 상태로 어딜 가는지도 모른 채요

그때는 아무도 파리의 외곽까지 가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리고 마르탱과 제니는 그곳에 아이들이 꼭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가족들과 이웃 주민도요

그래서 이미 주민들로 꽤 북적이고 있었죠

모델은 대부분 가볍고 하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오버사이즈 옷을 선보였죠

네트 티셔츠 아래 주름진 오버사이즈 탱크톱을 입는 걸

사람들은 '뉴 웻 룩'이라고 불렀습니다

실제로도 맞고요

옷이 도착했을 때 비닐 안에 있는 옷을 보면

매우 신나죠

그래서 옷에 비닐 커버를 그대로 남겨놓자고 했습니다

관객의 반응은 아주 이상했어요

반은 전문가 같았는데 입을 다물지 못했고

나머지 반은 소리를 지르면서 손뼉을 치고

흥얼거렸고 이는 곧 하나의 큰 경험이 되었죠

아주 감동적이었습니다

제 모든 커리어 중에서 가장 마술 같은 쇼라고 생각합니다

컨템포러리 패션 역사상 가장 큰 균열을 일으켰습니다

이 쇼는 특히 패션 시스템과 쇼 프레젠테이션

그리고 여성의 스타일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시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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