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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 21년(1946년) 초겨울
시부야구 요요기 우에하라 1516번지 토미오카 켄고
계세요?
계십니까?
누구세요?
토미오카 씨 계신가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저기...
실례지만 누구신가요?
농림성에서 왔는데요
아, 네
심부름으로...
저기 좀 왔는데요
아, 심부름을...
아, 그렇군요
잘 지냈나 보네
인도차이나에 비하면 여긴 많이 춥지?
전보는 받았어요?
응
왜 답장 안 주셨어요?
어차피 도쿄로 올 거라 생각했어
직장은 그만두셨나 보네요
돌아오자마자 바로 그만뒀어
왜요?
관리 노릇 하는 게 아주 질색이라서...
지금은 뭐 하세요?
업자랑 목재 쪽 일을 좀 보고 있어
아까 먼저 나오신 분 어머니세요?
응
닮으셨네요
자네는 어디 묵고 있어?
사기노미야의 친척 집요
갔더니 피난 갔다 아직 안 돌아왔더라고요
짐만 와 있고...
집을 지키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요
이 목도리 짐을 풀어서 그냥 빌려 왔어요
겨울 채비를 하나도 안 했거든요
어디 갈까?
옷 갈아입고 올 테니 기다릴래?
- 오, 왔나 - 다녀왔습니다
수고했네
코우다 양 이쪽으로 오게
네
일본에서 오느라 길이 멀어 힘들었겠지
네
아, 토미오카 군
사이공에서 자네 코우다 양과 만나지 않았나?
같은 숙소였다던데
이번에 타이피스트로 여기 왔어
자네는 처음인가?
네
그런가
이쪽은 본청에서 온 토미오카 켄고 군일세
석 달 전에 보르네오에서 전근 왔지
코우다 유키코입니다
아, 네
본토는 좀 어떤가? 점점 살기 힘들어진다던데
네
여기 있으면 극락이나 다름없어요
군의 목적이야 어찌 됐든
우리는 우리 본분에 따라 숲을 지키면 그만이니까요
내일 파스퇴르의 기나나무 재배 시험장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이거 한번 훑어봐 주시겠습니까?
알겠네
참 특이한 분이시네요
별나긴 해도 알고 보면 꽤 정이 많은 친구야
사흘에 한 번은 꼬박꼬박 아내한테 편지를 쓰고
미첼 립스틱 같은 걸 보내기도 한다네
책임감이 강한 친구지
한번 맡은 일은 확실히 해내는 사람이야
본토도 많이 변했네요
이렇게까지 달라졌을 줄은 몰랐어요
전쟁에 졌으니까
안 변하는 게 이상한 거지
멀리서 힘들게 돌아왔는데...
자네만 귀환자인 건 아냐
남자는 좋겠어요
여자는 참 편하군
코우다 양은 치바 출신인가?
어머 치바 아니에요
그런가
딱 치바 사람 같은데 말이지
그럼 어딘데?
도쿄예요
도쿄? 거짓말 마
도쿄 토박이 중에 코우다 양 같은 사람은 없어
있다면 카츠시카 요츠기 근처일까?
세상에 참 짓궂으시네요
토미오카 씨는 알아주는 독설가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이 사람 병이에요
그런가 도쿄인가...
에도 사람치고는 사투리가 섞여 있어
몇 살이야?
몇 살이든 상관없잖아요
스물넷이나 다섯쯤 됐나?
어머... 저 스물둘이에요
토미오카 씨 정말 너무하시네요
그래 스물둘이라...
아니, 여자가 스물넷이나 다섯으로 보인다는 건
영리해 보인다는 뜻이야
어려 보이고 싶어 하는 게 오히려 어리석은 거지
어이 코인트로 한 잔
멀리 인도차이나 달랏까지 온 코우다 여사를 위해
건배하자고
삐쳐서 가 버렸잖아
새침데기 같으니라고
젊은 여자가 이런 곳까지 오는 건 질색이야
나는 달랏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어
코우다 유키코는 자네에겐 과분해
나는 전쟁터에 와서 여자를 안을 순 없어서
향나무 연구를 시작했지 가라나무라고...
꽤 운치 있지 않나?
저...
오늘 업무는 무엇을 하면 될까요?
소장님이 딱히 시키신 일 없어?
아뇨 아무 말씀 없으셨어요
카노 군은?
아직 쉬고 계신 것 같아요
저기...
뭘 하면 좋을까요?
이 앞에 안남왕의 묘가 있는데
구경이나 다녀오면 어떻겠소?
어젯밤에 화났다면서?
무엇 때문에요?
나한테 아주 화가 났었다고 카노가 그러더군
이런 먼 곳까지 혼자서 올 용기를 냈네
피곤하겠지
네
난 숲속이라면 반나절에 12킬로는 거뜬해
걷고 나면 밤에 잠도 잘 오거든
저는 어젯밤에 어쩐지...
잠이 안 왔어?
카노 씨는 기분 나빠요
왜? 성격이 거칠어서 그런가
어젯밤에 술에 너무 취해서
오셨거든요
무서워요...
문득문득 여러 가지가 생각나요...
참보 보존림 시찰을 갈 때
마키타 소장님하고
본토에서 온 무슨 소령하고
당신이랑...
차를 탈 때 갑자기 당신이
'코우다 양도 같이 안 갈래요?' 하고 말을 걸어 주셨죠
넷이서 안남의 호텔에 묵으며
램프 불빛 아래서 밥을 먹고
다들 술 마시고 취해서 잠들었잖아요
그때는 다들 술 참 많이 마셨죠
그날 밤 당신 방은 제일 끝방이었어요
난 그걸 기억해 뒀다가
한밤중에 맨발로 처음 찾아갔었죠
문이 잠겨 있지 않았어요
그때가 당신과 저의...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저 자신도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됐나 봐요
이젠 어찌 되든 상관없어요
언제까지고 옛날 일만 생각해서 뭐 하겠어
옛날 일이 당신과 저에겐 아주 중요한 거예요
그걸 잃어버리면 당신도 저도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당신 부인은 보지 말 걸 그랬어요
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던데
왜 앞니에 금니 같은 걸 박았대요?
절 보고 아주 기분 나쁘게 웃더라고요
저보다 나이도 훨씬 많아 보이고요
말꼬리가 참 지독하네
이게 있을 때 일할 곳을 어디든 찾아봐
방은 또 어떻게든 구해 볼 테니까
싫어요! 필요 없어요
도망가는 거예요?
저를 버릴 셈이군요
전 당신을 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돌아왔는데
자네가 안쓰러워서 그러는 거야
있지...
솔직히 말하면 우리 그때는 꿈을 꾸고 있었던 거야
이런 말 하면 자네는 화내겠지만
일본에 돌아와 전혀 다른 세상을 보고 나니
집안 식구들을 더 이상 괴롭히는 건
가혹하다고 생각했어
어쨌든 전쟁 중에
꾹 참고 날 기다려 준 사람에게
모질게 이별을 고할 수가 없게 됐어
헤어질 수밖에 없어
싫어요!
그럼 당신들만 편하면
제 신세는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는 건가요?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예요?
자네는 지금 지쳤어
자신의 상황을 잘 생각해 봐
처음부터
가정이나 부인이 소중했으면 똑바로 처신했어야죠
부인을 쫓아내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자네가 오기 전까지 다 해결하고'
'부인과도 헤어져서'
'깨끗하게 자네를 맞이하겠다'고 해 놓고...
그럴 거면 아까 현관에서 만났을 때
부인 앞에서 확실히 선언했어야죠
'막노동을 해서라도 둘이서 같이 살자'더니...
돌아와 보니 벌레처럼 내팽개쳐지는군요!
참 제멋대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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