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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에이 경오 7년(1630년) 5월 13일 맑음
아침부터 더위가 유독 심하다
사시(巳時, 9-11시) 후계자이신 벤노스케 님께서
영지에서 올라온 시라카와의 첫 은어를
로쥬 도이 오이노카미 님께 헌상하기 위해
칸다바시 상옥으로 향하셨다
그 외에 기록할 만한 정무상의 일은 없다
다만 신시(申時, 15-17시)에 이르러
전 게이슈 히로시마 후쿠시마 가문의 낭인이라 칭하는 자가
정문에 찾아왔다
할복
원작 다키구치 야스히코 '이문낭인기'로부터
에도 소토사쿠라다초 이이 가문 상저택
전 게이슈 히로시마 후쿠시마 가문의 가신이셨구려
그렇소
성명은 츠구모 한시로라고 하오
츠구모의 '츠'는 오츠의 '나루터(津)' 자이고
'구모'는 하늘의 '구름(雲)' 자를 쓰오
그래 무슨 용무로 오셨소?
주군 가문이 몰락한 것이 겐나 5년
그때 고향을 떠나 에도로 옮겨와
어느 뒷골목에 거처를 정하고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한편으로
이런저런 연줄을 찾아 다시 관직에 나가길 바랐으나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 태평성대에는
결국 뜻대로 되지 않는 법입디다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무의미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이
생활은 날로 궁핍해져
이제는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소
그러니
이대로 뒷골목에서 신음하며 살아있는 치욕을 보이느니
깨끗하게 배를 가르고 생을 마감하고자 하니
아무쪼록 부디 귀댁의 앞마당을 빌려주실 수 없겠소?
이상과 같이 청하고 있습니다
또 기어들어 왔는가
질리지도 않는군
어떻게 처리할까요?
좋다 이리로 들게 해라
이쪽으로
사양 말고 드시오
폐를 끼치겠소
전 게이슈 히로시마
후쿠시마 사에몬다유 마사노리의 가신
츠구모 한시로라고 하오
기억해 주셨으면 하오
본 이이가의 가로직을 맡고 있는
사이토 카게유라고 하오
바로 뵙게 해주셔서 감사하오
소인의 용건은...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소
언제까지나 뒷골목에 머물며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느니
깨끗하게 배를 가르고 무사다운 최후를 맞이하고 싶다...
이런 뜻이었지?
그렇소
근래 보기 드문 기특한 마음가짐이오
그저 감복할 따름이오
귀공은
분명 전 후쿠시마 가문의 가신이었다고 들었는데
치지이와 모토메라 칭하는 자를 알고 있소?
치지이와?
그렇소
글쎄요...
모르시는가?
분명 전 후쿠시마 가문의 가신이라 말했소만
가문이 융성했을 때 가신의 수만
약 1만 2천 명이었소
일일이 다 알기는 무리라오
그렇구려
아니 그런 건 어찌 되든 상관없소
올해 초봄 분명 1월 말이었을 거요
치지이와 모토메라 칭하는 낭인이 찾아왔었는데
그자도 귀공과 같은 용건이었소
영예로운 죽음의 장소로 본 이이가의 현관 앞을 빌리고 싶다더군
원하신다면 이야기해 드릴까?
그때의 경위를
듣고 싶소
전 게이슈 히로시마 후쿠시마 가문의 가신이셨구려
그렇소
후쿠시마 사에몬다유 마사노리의 가신
치지이와 모토메라고 하오
그래 용무가 무엇이오?
주군 가문이 몰락한 뒤
이곳 에도로 와서 어느 뒷골목에 살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한편으로
이런저런 연줄을 찾아 다시 관직에 나가길 바랐으나
결국 이 태평성대에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드디어 올 것이 왔군
그래서 어떻게 처리할까요?
글쎄다
하찮은 것이 다 유행하는구나
이 일의 발단은 센고쿠 가문의 대처였지
그게 잘못된 거야
아니, 야자키 꼭 그렇게만 볼 것도 아니야
어째서요?
센고쿠 가문을 찾아갔던 오오이 아무개는
진실로 배를 가를 생각이었어
그 점에선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었지
그러니 그 기개에 감복했기에
센고쿠 가문도 파격적인 대우로
관리직으로 등용한 것이네
그건 괜찮아
그건 그것대로 좋단 말일세
문제는
그 이후 낭인 놈들의 발칙하기 짝이 없는 소행이지
배를 가를 생각 따윈 눈곱만큼도 없으면서
그저 입에 풀칠하기조차 막막하니
협박이나 구걸질로 가문들의 대문을 찾아다니는군
그렇다고 정말 현관 앞에서 배를 가르게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오늘만큼은 다른 가문들처럼
적당히 돈을 쥐여줘서 보내는 게 낫지 않겠나
아니
그건 안 될 말씀입니다
돈을 줘서 보내면
또다시 다른 놈이 현관 앞으로 찾아올 겁니다
너나 할 것 없이 계속 나타나겠죠
마치 설탕 더미에 개미 떼가 꼬이는 꼴이 될 겁니다
에도의 거리마다
세키가하라 이후의 낭인들로 아주 들끓고 있지 않습니까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굶주린 들개들입니다
이이가도 우습게 보였나 보군
다른 가문과는 달리 제법 뼈대가 있다고 여겼기에
낭인 놈들도 어제까지는 우리 대문을 피해 다녔지
그런데 결과는 어떠한가 저 꼴은
'붉은 갑옷'의 무용이니 뭐니 칭송받으면서도
천하태평의 세상이 되니
그런 건 결국 먼 옛날의 꿈같은 이야기지
이런 흥미진진한 소문이
에도 장안에 퍼진다면
더군다나 우리 주군께서는 영지에 계신 상황
그 부재중에 우리 가문의 위신을 깎아내리는 듯한 풍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용납 못 합니다
돈을 줘서 물러나 주길 바라는 것 같은
그런 얼빠진 짓은 애초에 생각지도 않았소
배를 가를 마음 따윈 추호도 없으면서
할복을 하겠다고 지껄이다니
가로님
응?
그렇다면
오래 기다리게 했소
가문 기마대 소속 카와베 우마노스케라고 하오
게이슈 낭인 치지이와 모토메라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안내해 드리겠소
네?
욕실로 안내하겠소
주군께서는 지금 영지에 가 계신 관계로
가로이신 사이토 카게유 님께서
후계자이신 벤노스케 님께 전말을 아뢰었더니
근래 참으로 기특한 기개를 지닌 자라고
즉시 대면을 허락한다는 말씀이 계셨소
그럼
후계자이신 벤노스케 님과
뵙게 되는 것입니까
그렇소
무례한 말씀이나
그 의복으로는 좀 그러니
목욕이라도 하며 몸을 깨끗이 하시오
의복 등은 우리 가문에서 준비해 두었소
그렇다면 말씀하신 대로 따르겠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꿈만 같군
정말이지
뜻밖이라기보다
마치...
실례하겠소
오래 기다리게 해서 실례했소
한 번 더 옷을 갈아입어 주시겠소?
네?
옷을 갈아입으라는 것이오
어찌 그러십니까
후계자 벤노스케 님과의 대면은...
음?
대면이 허락되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럴 리가 있겠소
무언가 착오가 있었던 모양이군
아니요 착오라니요
조금 전 기마대 소속 카와베 우마노스케 공께서...
카와베 공이?
그러고 보니
음...
과연
전말을
알고 계십니까
아니 이제 확실히 알겠소
가로직을 맡고 계신 사이토 카게유 공께서
귀공의 청원을 그대로 후계자 님께 아뢰었더니
근래 보기 드문 기특한 심지의 무사로다
가능하다면
내 가신의 대열에 합류시키고 싶구나
아니 하지만
스스로 배를 가르겠다고 말한 이상에는
보통이 아닌 상당한 결심 끝에 내린 결정이 아니겠는가
이제 와서 말려도 듣지 않을 터
뜻대로 하게 두어라
그 용맹한 무사를 만나
한마디 위로라도 건네고 싶다만
급한 용무로 로쥬 도이 님의 저택까지 가야만 한다
최대한 각별하고 정중하게 대우해 드리고
가신 일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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