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200 lines.
한글화 ebbb(2024.9.)
원작: 율리우스 카이사르 씨의 사업
역사 수업
그 당시에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포기한 상태였어요
그는 한때 일을 배우고 스스로 생계를 꾸리려고 했죠
그는 원로원 고위 관리들을 상대로 제기한
두 건의 소송에서 민주 클럽들의 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
혐의는 속주에서 자행된 착복과 직권 남용이었어요
그런 사건에서 시티(상인 계층)는 좋은 가문 출신의
젊은 변호사들에게 꽤 후한 보수를 지급했습니다
이는 시티와 원로원 간의 오래된 싸움이었습니다
예로부터 300개의 가문이 로마 안팎의 모든 중요한 관직을
자신들끼리 나눠 가졌습니다
원로원은 그들의 증권 거래소와 같았죠
그들은 그곳에서 누가 원로원의 의석에 앉을지
누가 법정에 앉을지
누가 전투마에 올라탈지
누가 자신의 별장에 머물지를 협상했습니다
그들은 로마 시민들을 하인처럼 대했고
그들의 하인들을 해충처럼 취급하는 대지주였습니다
상인들을 도둑으로 취급했고
속주민들을 적으로 여겼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은 대 카토로 C와 제가 로마에 있을 때
원로원 당의 지도자였던 소 카토의 증조부입니다
도둑은 훔친 금액의 2배를 갚아야 하고
대출에 이자를 붙이다가 적발된 자는 받은 금액의 4배를 갚아야 한다는
2세기의 법을 그는 칭송했습니다
저의 바로 전 세대에는
원로원 의원들의 상업 활동을 금지하는 법이 통과되었습니다
그 법은 너무 늦게 도입되었고 즉시 그 법을 피하는 방법들이 생겨났습니다
법은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무역을 막지는 못하죠
심지어는 무역 회사들의 확장을 초래했습니다
50명의 동업자가 선박의 1/50씩 소유하여
1척이 아닌, 50척의 선박을 지배하는 식으로요
어쨌든, 그 신사들의 사고방식을 알 수 있죠
그들은 뛰어난 장군이었고 속주 정복에는 능했지만
정복 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무역이 초기 단계를 벗어나면서
더 많은 양의 기름, 양모, 와인을 수출하고
곡물과 많은 상품을 수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우리가 로마에서 자금을 가져와 속주에 투자하려 했을 때
그 신사들은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완전히 귀족적인 무능함을 드러냈습니다
시티의 젊은 세력은
그들이 합리적인 지도력의 부재로 인해 고통받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장군이 되고 싶지도 않았고
퀴퀴한 사무실에 앉아
돈과 같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신사들은 시티의 적절한 통제를 받는다면
제자리에 머물러도 좋다고 생각했죠
포에니 전쟁을 예로 들어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아프리카로부터의 경쟁을 제거한다는
최고의 명분으로 전쟁을 벌였지만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카르타고에서 우리 군대는 물자와 공물을 포획하는 대신에
그들의 성벽과 군함을 제거했습니다
곡물을 가져오는 대신에 쟁기를 가져왔습니다
우리 장군들은 자랑스럽게 선언했습니다
'내 군단이 지나간 곳에는 풀 한 포기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그 풀이 바로 우리가 원하던 것이었습니다
그 풀 중 하나는 빵을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죠
포에니 전쟁에서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정복한 것은 황무지였습니다
그 땅은 손쉽게 우리 반도 전체에 식량을 공급할 수 있었지만
모든 것,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일하는 데에 필요한 농기구부터
그걸 다루는 노예들까지도
로마에서의 개선 행진을 위해 제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정복지에는 유사한 행정이 뒤따랐습니다
총독들이 숫자를 기록해 둔 곳은 그들의 개인 회계 장부뿐이었습니다
장군의 튜닉이 어떤 코트보다도 주머니가 많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총독들의 옷은 전체가 주머니로만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 신사들이 본국으로 돌아갈 때
그들은 마치 갑옷을 입은 것처럼 달가닥거렸습니다
C가 젊었을 때 기소했던 인물들인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와 '가이우스 안토니우스 히브리다'는
마케도니아의 절반을 배에 실어 왔습니다
물론, 그런 방식으로 진정한 의미의 무역을 확립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모든 전쟁은 로마에서의 파산과 지급 정지로 이어졌습니다
군대의 모든 승리는 곧 시티의 패배였습니다
장군들이 축하했던 승리는 곧 시민들에 대한 승리였습니다
포에니 전쟁을 종식시킨 자마 전투의 소식은
두 가지 언어에 의해 모두 공포의 비명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카르타고와 로마의 은행들은 모두 공포에 떨었습니다
원로원은 그야말로 돈줄을 도살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스템은 뿌리까지 썩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로마의 모든 사람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원로원의 도덕적 부패에 대한 소문이 모든 이발소에 퍼졌습니다
심지어 원로원 안에서도
'철저한 도덕적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대 카토는 300개 가문의 앞날이 암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들의 평판을 개선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사르디니아의 재정관으로서
그의 옷과 제사용 그릇을 들고 다니는 하인 한 명만 데리고
관할 지역 내 모든 도시를 걸어서 순회했습니다
재정관 임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
그는 군마를 팔아서 출항했는데
국가에 운송비를 청구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불행히도 그는 폭풍우를 만나
배가 난파되었고 자신의 회계 장부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정직하게 행동했는지
아무에게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한탄하며 여생을 보냈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믿기 어려운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시티는 '좋은 본보기'를 보이거나 도덕적인 연설을 하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즉, 관리들에게 충분한 급여를 줘야 했습니다
사실, 문제의 신사들은 의무감에서 그들의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을 불명예스럽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 높은 이상을 가진 그들의 대안은 도둑질뿐이었죠
그들은 공물로 받은 곡물 도로 건설에 할당된 자금
심지어는 공공용수까지도 훔쳤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시티는 비합리적이지 않았습니다
시티는 정복된 속주의 상인들과 협력했고
그들이 법적 조치를 취하도록 부추겼습니다
그렇게 해서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시티의 주요 대변인인 키케로도
시칠리아 회사들을 대신하여 몇 건의 재판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원로원의 우리 신사들은 재판에 익숙해졌습니다
비에 익숙해지면 코트를 입는 것처럼요
그때부터 그들은 소수에게서 많은 것을 훔치는 대신에
모든 사람에게서 조금씩 훔쳤습니다
그럼에도 법적 소송이 위협적이면 그들은 모든 것을 훔쳤습니다
소송 제기에는 돈이 들죠
그래서 그들은 그 돈조차 자신들이 갈취한 사람들로부터 훔쳤습니다
그러자 로마의 몇몇 부유한 민주 클럽들이 원로원의 도둑들, 더 정확히는
속주의 로마 상인들이 일을 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든
가장 뻔뻔한 자들을 상대로 한 소송에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기소는 피고의 신임을 어느 정도 떨어뜨렸고
아마 더 중요한 점은
젊은 변호사들에게 일을 배울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단순히 몇 가지 재치 있는 연설 이상의 것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변호사는 증인을 확보하고 지도해야 했으며
사법 기구가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현금을 현명하게 분배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심지어 원로원 가문 출신의 젊은 변호사들도 영입했습니다
행정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그들이 배우는 데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었습니다
뇌물을 제대로 받으려면
직접 뇌물을 줘 본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C는 두 사건 모두 패소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가 무능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가 너무 유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로마를 떠나야 했다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죠
그 이유는 자신에게 적대적으로 형성된 분위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였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수사학 기술을 완벽히 하기 위해 로도스로 떠났습니다
이 젊은 변호사가 다소 급작스럽게 떠난 이유에 대해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 만큼
그의 여정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특정 상황에서 변호사는
승소보다는 패소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처음 맡은 몇몇 사건에서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이 젊은이의 약점 중 하나는 무슨 일이든 어중간하게 하는 법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아마도 처음부터 제대로 된 변호사가 되고 싶었을 것입니다
나중에 그가 전쟁을 벌일 때도 똑같은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 때문에 내 머리가 하얗게 세었죠
하지만 꽤 이른 시기에 그는 민주당에서 떠오르는 인물 중 한 명으로 여겨졌습니다
맞아요 돈이 미끼였을 때
그는 더 높이 올랐습니다
그들은 이름에 관심이 많았죠
그의 가문은 시티에서 가장 오래된 15 또는 16개의 귀족 가문 중 하나였죠
킨나의 딸이라는 이유로 첫 번째 부인인 코르넬리아와 이혼하라는
술라의 요구를 그가 단호히 거부한 것은
민주적 정신을 보여준 것임을 부인할 수 없어요
그것에 대해서도 진지하지 않았다는 말인가요?
왜 진지하지 않았겠어요?
킨나는 스페인에서 큰돈을 벌었습니다
그건 몰수되었잖아요
C의 몫은 몰수되지 않았죠 그들이 몰수하려 하자
그 돈과 아내를 데리고 아시아로 떠났습니다
그가 이혼을 거부한 것이 정치적 신념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시는군요
그리고 사랑 때문인 것은 더더욱 아니고요?
당신 말대로라면 그는 전혀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이었겠군요?
왜 내가 그런 말을 믿어야 하죠?
바로 그 당시에 그는 사랑에 빠졌습니다
시리아인이고 해방된 노예였죠 이름은 기억나지 않아요
코르넬리아는 그 일로 매우 화가 났었습니다
그들이 배에서 내리기도 전에 불쾌한 장면들이 몇 차례 벌어졌고 그 시리아인은 C에게 이혼하라고 했죠
마치 술라처럼요
하지만 C는 그에게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에게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는 마음이 머리를 지배하도록 두지는 않았죠
그가 고모와 코르넬리아를 위해 마련한 장례식은요?
그건 정치적인 문제였어요
그는 마리우스와 킨나의 밀랍 가면을 장례 행렬에서 쓰도록 했어요
민주당은 그 일을 위해 그에게 20만 세스테르티우스를 지급했죠
그의 가족 특히 그의 어머니는
이미 말했듯이 매우 분별 있는 여성이죠
오랫동안 그를 용서하지 않았어요
20만 세스테르티우스는
훌륭한 요리사 두 명에 드는 돈보다도 적은 금액이었죠
하지만 민주 클럽들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시위에는 더 이상의 위험이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때쯤엔 이미 법무관도 민주주의자였으니까요
그는 항상 돈이 필요했습니다
한 번은 노예무역에까지 손을 댔었죠 당신도 해적 이야기는 들어봤겠죠?
그 이야기를 아는 대로 들려주시겠어요?
젊은 카이사르는 파르마쿠사 섬 근처에서 해적들에게 붙잡혔습니다
해적들은 상당한 규모의 함대를 운영하며 수많은 선박을 가지고 바다를 지배했습니다
해적들이 몸값으로 20탈렌툼을 요구하자 처음에는 그들을 조롱했습니다
해적들은 그가 누구인지 몰랐을까요?
그는 자발적으로 50탈렌툼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동료 몇 명을 여러 도시로 보내 돈을 마련하게 했습니다
그는 의사, 요리사 하인 둘과 함께 남았고
이 소아시아의 살인자들에게 전혀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해적들을 경멸적으로 대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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