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200 lines.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빨리 끝내고 싶었고
과정은 상관없었어요 그 정도로 절박했죠
지인이 전화번호를 주더군요
마피아였어요
암호로 얘기하더라고요
캐딜락, 쉐보레 롤스로이스 중 뭘 원하냐고요
쉐보레가 500달러로 제일 저렴했어요
캐딜락은 750달러였고 롤스로이스 가격은 또 달랐는데
1960년대에 천 달러였어요
그게 낙태 수술 대가로 제시한 금액이었어요
저는 쉐보레를 원한다고 했더니 그쪽에서도 알았다면서
돈을 가지고 올 주소를 알려 주더라고요
익숙한 동네는 아니었어요
배정된 방에 들어가서
침대에 앉아 기다렸어요
그다음에는...
남자 셋 여자 하나가 들어왔어요
그리고 낙태를 하려는 다른 젊은 여자도 같이 들어왔죠
전 겁에 질렸어요
그 사람들은 딱 세 문장만 말했어요
'돈은 어디 있지?'
'누워서 시키는 대로 해'
'화장실에 들어가' 그게 다였어요
"모텔"
저는 누워서 최대한...
숨을 쉬어 보려 했고 피는 계속 나는데
갑자기 그 사람들이 사라졌어요
그냥 가 버렸죠
외딴 모텔에서 두 여자가 피를 흘리고 있었어요
계속 거기 있었으면 죽었을 거예요
그러다 한두 시간이 지나고
어지럽지만 문밖으로 나가서
택시를 잡고 각자 갈 길을 갔어요 그게 끝이었어요
일리노이주를 비롯해 미국 대부분 지역에서
낙태는 불법이었어요
의학적인 수술이 아니었고
범죄에 불과했어요
낙태가 불법이라는 이유로
"주디스 아카나 제인 멤버"
여성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고통받는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여성들은 두려움과 절박함 속에 끔찍한 일을 했어요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여성들도 있었죠
그들 주변 사람이나 이미 낳은 아이들도
고통을 겪어야 했어요
그래서 생각했죠
우리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요
'낙태를 해야 한다면 우리가 도와줄게요'
'이 번호로 전화해서 제인을 찾으세요'
'제인'은 똑똑한 여성들이 모여 만든 대범한 단체였어요
시카고 마피아와
"케이티, 제인 멤버" 경찰들의 눈을 피해
활동하던 단체였죠
당시 남성들이 여성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던 게 큰 도움이 됐어요
제인의 일원으로서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어요
제가 하는 일로 인해 감옥에 갈 수 있다는 것도요
"마리 리너 제인 멤버"
하지만 그때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요
체포되기 전까지는
별 탈이 없을 줄 알았어요 괜찮다고 생각했죠
너무 사소한 부분까지 일일이 다 걱정하다 보면
"엘리너 올리버, 제인 멤버" 아무것도 못 해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게 시카고의 매력이었어요
사람들이 뭔가를 해낼 수 있는 곳이었죠
시카고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어요
"실라 제인 멤버"
그래서 정치가 현실적으로 다가왔고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 바로 체감됐어요
낙태에 특별히 관심이 있어서 시카고에 간 건 아니었어요
다들 팻말을 들어 주세요
제인에 있는 다른 여성들처럼
저마다 다른 걸 하다가 모였어요
반전 운동이라든가
시민권 운동 같은 것이었죠
항상 우리 주변에 있었어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죠
이 냄새 나는 놈들아 그래서 싫어하는 거야
시카고 남서부에서 열린 주택 매매 차별 반대 시위에서
인종 차별주의자들이 거리에서 병을 던지려 했어요
네 어미는 창녀야!
창녀라고
그때 제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지지하는지
정의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더러운 것들!
그때 병에 맞아 생긴 상처가 아직 팔에 있어요
계속 앞으로 가요
이곳에 팽배한 증오와 적대심이
앨라배마나 미시시피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더 깊습니다
사람들은 오물이 든 봉지를 던지거나
여성들 귀에서 귀걸이를 잡아 뜯고
나무에서 폭죽을 던졌어요
늘 두려움에 시달렸어요
그래도 저는 정의를 지키는 전사나 다름없었어요
당장 자유를 달라
시카고 대학교에 입학하고
'자유로운 여름 프로젝트'에 참여했어요
미시시피에 가서 유권자 등록 운동을 도왔죠
그해 여름에
부당한 권력에 맞서야 할 때가 있고
"헤더 부스 제인 멤버"
싸워서 이겨야 할 부당한 법이 있다는 걸 배웠어요
그리고 캠퍼스로 돌아왔는데
제 친구가 기숙사에서
칼로 위협을 당하면서 자기 침대에서 강간을 당했어요
보건 진료소 학생, 직원 보건실
친구와 보건실에 갔는데
몸을 함부로 굴렸다는 소리를 들었고
산부인과 검진을 지원할 수 없다고 했어요
저는 그 말에 너무 화가 났어요
여성들은 생식권과 의료적 권리는 물론
기본적인 권리에서도
상당히 불리한 입장에 있었어요
여성들은 스스로 결정을 내릴 권한이 없었어요
피임 시술을 하려면 결혼을 해야 했고
피임약이 나오고 나서도
처방받으려면 기혼 상태여야만 했죠
결혼하지 않았다면 운이 없는 거였죠
모든 여성이 피임 도구를
공개적으로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죠
대학에 입학했을 때
가게에서 5달러짜리 반지를 사서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고
의사를 찾아가서 누군가의 아내라 말하고
피임을 원한다고 하라더군요
말도 안 되는 조언이었죠
여성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낙태에 대해 논의했던 기억은 없어요
한 친구가
자기 동생이 임신을 했고
자살 직전이란 말을 하기 전까지는요
아기를 낳을 준비가 안 됐고
낙태 수술할 의사를 찾는다기에 도와줘도 되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수소문하기 시작했죠
시민권을 위한 의료 위원회
시민권 운동에 참여하던 의사들을 찾아갔더니
T.R.M. 하워드 박사님을 소개해 줬어요
미시시피 백인 시민 위원회는
미시시피주의 흑인들에게
엄청난 경제적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미시시피에서 시민권 운동가로 활동하던 분인데
물리적인 폭력도요
에밋 틸 살인 사건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셨죠
이후 KKK 살해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면서
시카고로 오시게 됐어요
유명 의사 병원 개업
63번가에 개업을 하셔서
하워드 의료 센터
전화를 걸었어요
제가 말을 꺼내자마자
맡아 주시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약속을 지키셨죠
소문이 퍼지자 또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하워드 박사님에게 연결해 줬고
또 소문이 퍼졌어요
그제야 이게 얼마나 큰 문제인지 알게 됐죠
학기 말이라 기숙사에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복도 끝에 여자애가 있었는데
동급생은 아니었고 나이가 좀 더 많았어요
문을 두드리면서 도와달라고 하기에
"아일린 제인 멤버"
방으로 갔더니 피가 흥건하더군요
낙태를 했는데 피가 계속 나니까 의사를 불러 달라고 했어요
복도에 공용 전화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복도에 나가 전화를 걸었어요
의사가 피는 얼마나 나느냐고 묻기에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상황이 심각하다고만 했어요
그랬더니 의사는 다리를 올리고 얼음을 구한 뒤
2시간 후에 전화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자전거 타고 가서 얼음을 구해 왔고
방을 정리했어요
저한테 남친을 포함해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더군요
그걸 혼자 감당하려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싶었어요
다음 날 보러 갔는데
피는 멈췄더라고요 응급 처치가 효과가 있었던 거죠
천만다행이었어요
너무 무서우셨겠어요
그럼요
사실 그때 취해 있었어요
학기 말이라 다 같이 대마초를 피우고 있었는데
일이 터져서 정신이 확 들었고 밤에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었죠
정말 무서웠고...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껴서 기억에 남아요
출입 금지 회복 병동
저는 쿡 카운티 병원 의대 실습생이었어요
그때 뇌리에 깊이 박혔던 건
사람이 절박해지고
다른 선택지가 없을 때 하는 행동이었어요
"앨런 웨일랜드, 산부인과 의사" 여성 환자들이 오면
다양한 합병증이나 심각한 부상 때문이었어요
그 모든 게 불법 낙태 때문이었죠
여성들은 임신 중절을 위해
여러 가지 물건을 썼는데
그것 때문에 자궁이나 방광이 뚫리고
장까지 뚫리는 경우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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