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200 lines.
베를린 영화제는 몇 번 참석하셨어요?
올해가 24번째입니다
24번째
1998년부터 지금까지
작년 빼고는 거의 매년 왔습니다
코로나 첫 해에도 오셨어요?
코로나 첫 해
코로나 첫 해 예, 왔었죠
그때는 서울 출발할 때는
서울이 확산되기 시작을 했고
다음에 유럽 왔을 때는
유럽이 막 시작할 때였다가
서울에 돌아가니까
유럽이 확산되기 시작을 해서
대부분이 다
영화제가 그만뒀을 때입니다
내가 2020년에 왔었죠
올해는 좀 마음 편하게 오신 것 같아요?
이제 그 영화제 타이틀 이런 거 없으시고
- 그냥, 네 - 네, 그래서
뭐, 영화제 타이틀 있을 때 왔더라도
나는 영화 선정은 안 했으니까
네
그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는 없지만
그래도 영화제 있을 때보다는 부담은 적죠
이게
또, 이
지금까지하고 좌석이 좀
달라져 가지고 하나 더 올라가네
이게 필요할 것 같더라고
그니까
이 그립이
그립을 사드릴 테니까
- 이거 있으면 좋죠 - 이거 빨간 거는, 그
- 빨간 거는 이제 동영상 - 돌아가는 거야?
동영상
이거 찍고 있는 거는 촬영
카메라
지금 흔들려도 그렇게 별로 흔들리지 않아요, 이거는
짐벌이 있어서
김 위원장님이...
누르는 게
그거 하나 이거 빨간 거 들어오면 녹화
밑에 거는
밑에 건 아니고 그거 끄면 되지
밑에 거는 포토
아니 밑에 이게 포토
이게...
이걸 끄고 포토를 해야지
이걸 끄고
녹화를 끝내고 일단 녹화 중이잖아, 이거 녹화 중
이걸 끝내고...
- 이거... - 아니, 아니, 이걸 끄라고, 이걸
한번 끄고
근데 이게 찍혔나, 안 찍혔나 하는 거를
리와인드 하는 거는 어디 있는 거야?
그거는 다 찍은 다음에
지금 녹화 중이잖아
지금 계속 녹화 중이잖아 아버지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 근처에
고구려의 유족이라고 하는
코리아타운이 있다 그런 얘기를 쭉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거면
내가 다큐를 찍겠다
그렇게 곡언을 했어요
캠코더를 하나 좀 사달라
부산 영화제나 칸 영화제 할 때는
리셉션 라인에서 2시간 이상 서 있어도
좀 견딜 만했는데
어, 이거는 좀 피곤하다
아, 이제는 힘드세요
너무 무리하지 않으셔도 되고
오늘도 많이 걷지 마시고
알겠어
자
이제 또 가야죠
- 영화 보러 - 네, 가세요
오늘 영화는 멕시코 영화인데 좋을 것 같고
두 번째 프랑스 영화인데
그것도 감독이 괜찮아서 좋을 것 같은데
네
근데 뭐
계속 다 볼 수는 없으니까
네
마침 코로나19였기 때문에
극장이 굉장히 위기란 말이야
그래서 극장이 위기고 해서
아, 이게 극장을 다니면서 좀 찍자
안 흔들리고 잡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나을지
약간 넓게 찍는 게 나을 것 같긴 해요
이게 잘리는 것 같아 가지고
- 예 - 예
이, 이게 편하세요?
- 아니면 이걸로 - 이게 좀 편안한가...
하나는 같이 잡아주는 게 어떠신가 해 가지고
- 이렇게 - 예, 예, 예
제가 인도한다고 생각하시고
저 따라오면서
아까 찍으신 것처럼
이런 것도 이렇게 한번 쑥 훑어주면 좋긴 해요
천천히 뭐, 이렇게
여기서부터, 여기서부터 이렇게 쑥 훑어주면서
사실 제 기능을
제대로 이해를 못 하고
찍은 것이 뭐 사실이거든요
그런데 오늘 구도라든가
또는 카메라 움직이지 않고
어떻게 이걸 지탱하느냐
또 어떤 시각에서
샷을 고정시키고 촬영할 수 있는지
실습을 겸해서 했는데
굉장히 유용한 것 같고
앞으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잘 찍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촬영하는 걸로 할게요
이거는 제가 한번 끄겠습니다
예
촬영 그만하셔도 돼요
위원장님은 이렇게 뭐 안 세우시고 그냥 손으로 들...
그게 괜찮으세요?
글쎄요 이게...
흔들릴 것 같아서
이렇게 여기다가 이걸 하나 놓고
아까 그 탁자가 있었는데
영화관에 관해서 좀 말씀을 여쭤보겠습니다
감독님에게 영화관은 어떤 의미가 있으신가요?
저는 어 약간 이렇게
햇빛을 볼 수 있는
햇빛이 비치는 동굴 같은 공간이라고
생각을 해봤어요
영화관이라는 게, 뭐 늘 이렇게 혼자 있고
어둡고 뭔가 이렇게
네거티브한 그런
좀 다운되어 있는 그런 공간이 아니라
뭔가 영화를 통해서 제가 어떤 감정도
밝게 가질 수 있고
어떤 생각과 성찰을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지 않을까
그럼 이렇게 그냥 할게요
네, 네 그럼요
선생님께서 영화관에 관해서
아주 인상 깊은 추억이 있으시다면
한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말, 그 제 고향이 제주도거든요
네
일제강점기니까요
7살 때였습니다
제주극장에서 영화를 하는데
호기심이 많은 소년이었기 때문에
동네 개구쟁이들 몇을
말하자면 유혹을 해서 극장까지 갑니다
그러나 미성년자에게 입장할 기도가 없죠
그 당시 기도라는 건 극장을 지키는
매표원이나 다름없는 역할을 했는데요
그래서 극장 뒤로 가면
공짜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그건 뭐냐면
바로 무대 쪽에 화장실이 있었는데요
무릎의
연, 연골이 다 나가가지고
그래가지고
테니스는 벌써 1년째 못 치고 있고요
어디...
거울을 봐야지 뭐 얼굴이
뭐요?
아니 얼굴은 괜찮은데
- 콤팩트 드릴게요 - 머리, 머리가
- 콤팩트 드릴게요 - 일로 오세요, 이렇게
- 보여드릴게요 - 이거 하나만 저거
아니, 아니, 아니 일단, 일단
여기...
아니, 그
60년대 한국 영화가
제작 1년에 200편이 나왔어
극장은
지금 몇 개 없었거든 그 당시에
근데 그 당시엔 또 뭐 개봉관이 있었고
재 해서 재...
- 재개봉관 - 재개봉관이 있었고
3번까지
3관까지 있었죠
약간 나눠져 있었어
그러니까
개봉관 한번 잡으려고 하면
하늘의 별 따기야
그 당시는 그랬어요
근데 우리가 주연한 영화가
그때는 국도극장에서 하기로 했는데
국도극장
사장이 반대하면 못 들어갔어
그래서 야, 나도 극장을 하나 가져야겠다
그런 꿈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다 마침
명보극장을 판다고 그래가지고
그때 내가 무리하게 명보극장을 인수했어
그런 기억이 납니다
저희는 극장을 하면서
줄이 어디까지 섰나를 막 느껴보고 산
극장을 한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제일 많이 줄을 섰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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