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200 lines.
내가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들었어
그리고 난 지금 어른이 되었지
지금까지 그 모든 것을 이루려고 노력했지만
내가 어떻게 도전하든 간에
항상 같은 짓만을 반복하는 것 같아
좋은 시절, 나쁜 시절
알다시피 겪을 만큼 겪었어
내 여자 친구가 갈색 눈을 가진 남자와 바람났을 때도
글쎄 난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고
폴란드 침공: 도시 폭격
대공습 나치 공군 런던 폭격
20세 남성 전원 징집
집에 있었으면 하고 얼마나 바라는지
난 내 이웃들이 뭐라 하는지는 신경 안 써
난 매일 매일 너를 사랑해 줄 거니까
공습 주의 불빛을 차단하십시오
내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어봐
독일 전쟁 종식
우리는 절대 이별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영국에서의 어린 시절은
제2차 세계 대전의 그림자 속에서 보냈어요
부모님과 조부모님 세대는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겪었죠
"지미 페이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미래를 향한 희망이 아주 컸어요
그 당시 런던은
폭격으로 파손된 건물도 많고
폭탄 구덩이에...
그냥 전후의 전쟁터 같았어요
배급제도 계속됐죠
"존 폴 존스"
달걀과 우유 버터 같은 걸
쿠폰과 교환했어요
다들 점차 회복해 갔죠
런던 외에 웨스트미들랜즈에선
전후의 도시 외곽 지역 분위기로
조용했어요
미국은 제겐 꿈이었죠
"로버트 플랜트"
전혀 다른 세상이었거든요
이곳과 달랐어요
나는 기차를 탔고 정말 멋진 아가씨를 만났어
그녀는 힙스터였고 끝내주는 아가씨였지
그녀는 예뻤고 뉴욕시 출신이었어
그리고 그녀는 옛 아름다운 길을 따라 걸어갔지
히, 그리고 후 하며
난 그녀를 그냥 보낼 수 없었어
조니 버넷 트리오 '트레인 켑트 어롤링'
한번은 끝내주는 로큰롤 음악을 듣고 있었어요
미국 음악이었죠
전자 기타 소리가 엄청나더라고요
마치 화성에서 생겨난 소리 같았어요
실은 멤피스에서 왔지만요
그때 영국은 안전한 음악을 하는 음악가들이
대다수였어요
그때 로니 도니건이라는 압도적 인물이 등장했죠
로니 도니건
로니 도니건의 연주를 보고
완전히 매료됐어요
마치 새로운 입구 같았죠
그걸 계기로
영국에선 보지 못한 자유로움을 접하게 됐으니까요
보여줘 지미!
하루는 학교에 갔는데
한 친구가 운동장에 있고
사람들이 주위에 몰려 있었어요
"지미 페이지의 모교 엡섬"
로드 와이엇이란 친구가
어쿠스틱 기타로 로니 도니건의 노래를
연주하고 있었죠
"지미 페이지와 로드 와이엇"
그 친구한테 가서 말했어요 '나도 집에 그거 있어'
학교에 가져오라더군요
조율하는 법을 알려주겠다면서요
그러면서 코드 몇 가지도 알려줬어요
'올 유어 오운' BBC 텔레비전
전 기타를 손에서 놓질 않았어요
아침 먹기 전에도 치고
학교 가는 길에도 쳤죠
학교에 가서도 연습하고 싶었는데
그랬다간 압수당해서
수업이 끝나고 나서야 돌려받았어요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죠
'기타에 빠져 있는 걸 이해는 못 하지만'
"퍼트리샤와 제임스 페이지"
'학업만 잘 따른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고 허락하마'
하지만 어머니는 제가 기타를 계속하고
밴드에 들어가는 걸 응원하고
절 굉장히 믿어주셨어요
저한텐 의미가 컸죠
존 폴 존스
부모님이 보드빌 공연을 하셨어요
어머니는 정통 음악을 하는 가수셨고
"마지 캐슬과 조 볼드윈"
아버지는 코미디언이셨죠
피아노도 치셨어요
그래서 부모님과 함께 다니면서
군부대에서
두 분이 공연하시는 걸 보곤 했죠
그 뒤에는 해외 아티스트 공연이 이어졌어요
아코디언 연주자 밴조 연주자
전부 열심히 봤죠
그런 음악적 뿌리가 있었어요
"마지 캐슬"
그런 것들이
제가 한 모든 것의 기반이 됐죠
애니, 로버트 로버트 플랜트 시니어
전 웨스트미들랜즈에서 자랐어요
아버지 혈통이 그곳이고
어머니는 집시 가문 출신이세요
어린 시절엔 보호가 심했어요
그러다 부모님이 절 큰 마을의 큰 학교로 보냈죠
공인 회계사가 되려고 공부했어요
"로버트 플랜트의 학교 행진 스타워브리지"
그래도 학교 수업에 흥미가 많았어요
그때 리틀 리처드가 등장했는데
워낙에 자극적이고 매혹적이면서
빠져드니까
다른 것들은 전부 시시해졌죠
리틀 리처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노래뿐이란 걸 알았어요
그게 결정타였어요
그렇게 평생 꽂힌 거예요
존 보넘은 인터뷰가 거의 없고 1980년에 사망했다
해당 인터뷰는 이곳에서 처음 공개된다
전 존 보넘이에요
어렸을 때 드럼 리듬을 만드는 걸 좋아했죠
10살 때 첫 드럼 키트가 생겼어요
진 크루파가 나온 영화를 보러 갔는데
너무나 놀랍더군요
진 크루파
이곳 미들랜즈에서
남들과 전혀 다른 음반을 사곤 했어요
조니 키드 앤드 더 파이리츠가 그 당시 영향력이 컸죠
"조니 키드 앤드 더 파이리츠 '쉐이킹 올 오버'"
조니 키드 앤드 더 파이리츠
주크박스에서 계속 흘러나왔어요
커다란 15인치 스피커였으니
베이스 소리만 들렸죠
그걸 듣고 생각했어요
'이런 소리를 만들고 싶다'
아버지께 말씀드리니까 그러셨어요
'베이스 기타는 잠깐 유행하는 악기야'
'2년만 지나면 감쪽같이 사라지겠지'
'색소폰을 사면 계속 일할 수 있어'
전 싫다고 베이스 기타를 치겠다고 했어요
제가 연습하는 걸 듣고는 따라오라고 하셨어요
'내 왼손만 잘 보면 된다'
그리고 피아노를 치셨죠
그렇게 기본을 배웠어요
섀도스 공연
작은 밴드를 했어요
한번은 교회 유스 클럽에서 공연을 했는데
열정적인 젊은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눴죠
"고든 베이츠 목사"
오르간 연주자가 필요하다더군요
그래서 원한다면 내가 할 수 있다고 했죠
무슨 생각이었는지 몰라도요 근데 좋다고 하셨어요
세인트 에이든 교회 뉴엘섬
교회 음악은 즉흥 연주를 해야 해요
어차피 곡 연주는 잘 못했던 터라
전부 즉흥으로 했죠
찬송가는 배워서
찬송가가 뭔지는 알 정도였어요
딱히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괜찮은 일거리였거든요
신부님도 아주 멋졌고요
그렇게 14살에 오르간 연주자이자 성가대 지휘자가 됐어요
그러면서 1년에 25파운드씩 두둑이 받았죠
그 돈으로 펜더 베이스를 샀어요
목요일 밤에 마키 클럽에 가서
즉흥 연주를 하곤 했어요
그렇게 어느 정도 하고 나니
카터 루이스 앤드 더 서더너스라는 밴드에서
제게 와서 묻더군요
"카터 루이스 앤드 더 서더너스"
음반 녹음을 같이하겠느냐고요
전 재밌을 것 같다고 좋다고 했죠
그래서 내 키트를 들고 갔어요
디아몬드 풋 페달 앰프와
새로 산 깁슨 레스폴까지요
밴드 멤버들이 말하길
솔로 파트를 만들어 보래요
두 번째로 맞춰 볼 때부터 어느 부분 구상이 됐어요
그러고 나서 소문이 퍼졌나 봐요
어린 기타리스트가 있다면서요
"축하합니다! 카터 루이스 앤드 더 서더너스"
스튜디오에서 전화가 많이 오기 시작했거든요
그렇게 세션 일에 입문했는데
다른 사람들보다 7살씩 어렸어요
경력이 오래되거나 현직에 있는 사람 중에
잘 없었거든요
젊은 밴드가 어디서 영향을 받는지
어떤 레퍼런스를 쓰는지를 아는 사람이요
난 그런 걸 다 알았어요
그게 알앤드비든 블루스든
록이든 할 것 없이요
다들 음반을 구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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