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200 lines.
저는 어릴 적 굴 채취선에서 일했습니다
"알렉사"
거기서 언덕 위 저택을 올려다보곤 했어요
저런 집에 살면 기분이 어떨지 궁금했죠
'부자 놈들, 평생 일해 본 적도 없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 집이 제 거예요
아직 미완성이죠
저도 그렇고요
와 줘서 고마워요 뉴욕!
저라는 사람은 실수가 전매특허예요
실수는 나쁜 게 아닙니다
한번은 한 초일류 요리사한테 실력의 비결을 물었어요
그 요리사는 실수를 잘 고치고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죠
사람은 그렇게 고생하며 지혜를 얻는 거예요
제가 한 일과 겪은 일 모두
어떻게든 제 음악의 일부가 됐습니다
- 준비됐어요 - 좋아요
갑니다 3번째
힉스빌 출신 록 스타는 없었어요
그런 게 쌓이고 쌓여서
빌리 조엘이 됐죠
가자!
새하얀 원피스도 좋고 견진 성사 파티도 좋지
사람들의 고정 관념과 선입견에도 지쳤거든요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었죠
남들이 뭐라든 상관 안 해요
나 그냥 죽을래!
안녕하세요
'업타운 걸' 부른 사람이죠?
맞아요
노래 한 곡 해 주오 피아노 맨
이 밤에 노래를 불러 주오
내 뿌리를 잊으면 나 자신을 모르게 돼요
취하고 싶거든
사랑은 음악의 영감이 되지만 실연도 마찬가지예요
쉽지 않을 거예요
여긴 보이 스카우트가 아니라 음악계라고요
난 엔터테이너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음반 제작자입니다
거장 빌리 조엘입니다
빌리 조엘 씨입니다
- 빌리 조엘 - 빌리 조엘
빌리 조엘!
빌리 조엘 다 그런 거야
옛날부터 카메라가 불편했어요
지금처럼 카메라 앞에 서면
살짝 긴장하게 돼요
포위된 느낌?
피아노 뒤에 숨을 수도 없고
또 봐요
전 제가 록 스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전 음악가입니다
밴드 안에 숨고 싶어요
밴드가 편해요
멀리서 왔죠
봤어요
우린 서로를 잘 알죠
나 이러면 이상해요?
집에 가져가요
우린 음악가가 아닌 사람들을 '민간인'이라고 해요
우리 동료가 아니면 민간인이죠
누가 나 좀 영상으로 찍어 봐요
얼마나 개판을 치는지...
전 음악가들과 손발 맞추는 게 좋고
관객을 위해 연주하는 게 좋아요
브루클린에선 콘서트가 열렸지
섬을 잇는 다리들이 터져 나갔어
꾸준히 양질의 음악을 만들어 내려면
음악에 전념해야 해요
다른 것을 포기할 정도로요
둘, 셋, 넷
그녀는 철로에 서서...
누가 좀...
다른 사람이... 겹치네요
- 그녀는 져 주지 않아 - 음악 외의 인생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해요
소리 좀 들어 보죠
- 하지만 음악이 즐거우면 - 좋아요
흘러가는 인생을 눈치도 못 채요
전 어릴 적부터 밴드 생활을 했어요
처음엔 입에 풀칠이나 하고 싶었습니다
갑부가 되거나 세상을 돌아다닐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먹고살 수만 있으면 성공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성공한 삶이 꼭 편하지만은 않아요
때론 이런 성공이 어색합니다
빌리 조엘이라는 사람이 대체 뭔지 모르겠어요
길 가다가
누가 '빌리 조엘이다'라고 하면 그때야 깨달아요
'나 빌리 조엘이지?'
어쩌다 보니 이런 노래들을 만들었지만
어릴 적엔 음악 자체가 제 목표였어요
다들 절 뉴욕 출신 도시 사람인 줄 아는데
전 사실 롱아일랜드의 작은 동네 출신이에요
1960년대 중반 그 시절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밴드를 했어요
제 첫 밴드는 롱아일랜드의 '로스트 소울스'였습니다
처음 만든 노래는 비틀스 짝퉁이었어요
그때는 그게 최신 유행이었거든요
다들 비틀스가 목표였죠
높디높은 산을 올라
깊디깊은 바다를 건너...
그때는 고작 중학생이었는데 돈을 벌기 시작한 거예요
피아노 연주는 즐거웠죠
평생 이렇게 살아야겠다 싶었어요
14살에 자기 꿈을 깨달았으니 남들보다 빨랐던 셈이에요
첫 밴드는 잘됐나요?
지금도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1960년대 롱아일랜드 록 업계는
"존 스몰, 친구, 동료" 대단했어요
"해슬스의 고향 마이 하우스"
전 '해슬스'라는 밴드 소속이었어요
"해슬스" 그때 키보디스트가 탈퇴했는데
빌리 밴드의 공연을
보게 된 거예요
진짜 뻔하고 우스꽝스러웠죠
옷차림도 웃겼고요
갑자기 무릎 꿇고 노래를 부르는데
거기 꽂혔습니다
'저 친구 괜찮다'
그리고 빌리한테 해슬스에 들어오라고 했어요
빌리는 그럴 순 없다고 지금 밴드원들이 소중해서
못 그만둔다고 했죠
마음을 못 꺾을 것 같아서
이적하면 하몬드 B-3 오르간을 사 주겠다고 했어요
롱아일랜드 인기 밴드들은 보통 하몬드 B-3를 썼어요
전 손대 보지도 못한 꿈의 오르간이었죠
몇천 달러는 해서 살 수가 없었어요
전 빌리한테 우리 밴드에 오면
하몬드 B-3 오르간을 주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친구 따위 버리고 오겠다고 했죠
밴드 하는 사람은 다 돈이 없지만
빌리는 진짜 돈이 없었어요
거지 밑에 빌리 조엘이 있었죠
담배 한 갑도 못 살 만큼 쪼들리고 살았어요
차 없는 뚜벅이 신세라
리허설할 때나 공연할 때는
존 차를 얻어 타고 가야 했어요
빌리 어머니 로스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나요
빌리가 어머니께 저처럼 되고 싶다고 했고
어머님은 제 장발을 보고 기막혀하셨어요
그래도 로스는 음악가에게 있어 최고의 어머니였어요
아들을 전폭적으로 응원해 주셨죠
처음부터 빌리의 재능을 믿으셨던 거예요
우린 죽이 잘 맞았어요
핫도그 같은 콤비였죠
빌리가 소시지고 제가 빵이었어요
우린 뭐든 함께했어요
전 존과 친해졌고
존의 아내 엘리자베스와도 친해졌습니다
아내 이름은 엘리자베스 웨버였어요
전 아주 젊은 나이에 결혼했죠
당시 존은 밴드를 했고 전 학생이었는데
임신을 해 버렸어요
"엘리자베스 웨버" 그래서 존한테 결혼하자고 했죠
빌리를 처음 만난 건 1967년이었어요
빌리는 17살이었죠
수줍음 많고 조용한 친구였지만
그 나이부터 정말 성실했어요
성실해야 성공한다는 걸 알고 있었죠
빌리는 초기부터 싹수가 보였어요
당시 빌리에게는 밴드밖에 없었습니다
전 본격적인 골수 음악가였어요
"해슬스"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당시 리드 보컬이 따로 있었는데
빌리가 그 친구보다 훨씬 나았어요
결국 관객들이 좋아하는 인기곡들은
거의 빌리가 부르게 됐죠
해슬스는 아무거나 부르는 커버 밴드였어요
주로 최신 유행가를 불렀죠
하지만 해슬스만의 노래가 갖고 싶어졌어요
밴드로서 음반을 내고 성공하려면
커버곡을 넘어 자기만의 곡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마구 곡을 썼죠
'에브리 스텝 아이 테이크'
해슬스의 싱글 음반이에요
모든 걸음마다
모든 순간마다
당신 없는 내 삶을 그만두려 해
"맥도날드 햄버거"
그게 빌리가 쓴 해슬스의 첫 곡이었는데
롱아일랜드 라디오에서 1위 히트곡이 됐죠
"에브리 스텝 아이 테이크 해슬스"
처음으로 우리 싱글이 라디오에 나간 거예요
온 동네에 소문이 났죠
다들 열심히 연락을 돌렸어요
차창을 열고 달리면서 라디오를 켜 보라고 소리쳐 댔어요
모든 걸음마다
모든 순간마다
당신 없는 내 삶을 그만두려 해
어딜 가든 만석이었죠
"우리 동네가 낳은 스타" 동네에선 스타였어요
어딜 가도 우릴 알아봐서 즐거웠습니다
"해슬스가 온다?"
해슬스를 처음 본 건 1967년이었어요
빌리의 장점은
"브라이언 러글스" 오르간 실력이었어요
하몬드 B-3요
그거 하나로 청중을 들었다 놨다 했죠
목소리도 끝내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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