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200 lines.
어찌 그리 보느냐?
한여름의 매화가 영 기이해서 그러느냐?
아, 아, 아니옵니다
때맞춰 피우는 꽃은 재미가 없지 않느냐
한겨울 눈 속의 매화는 되어야
맛이 나겠지
너 얘기 들었어?
성현각으로 오늘 아침에 사주단자 들어갔다는 거
대군도 장가가긴 하나 보네
이건 창가에 말려라
예
- 비가 옵니다 - 두어라
비를 좋아하십니까?
왜, 너는 싫으냐?
좋을 리가요
진창에 질척대고
치마는 다 젖고
빨랫감만 늘어나니
비를 좋아하는 궁인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래?
자가!
아이, 그만 들어가십시오
아, 이러다 고뿔 걸리십니다
가만히
너도 한번 느껴보거라
이 청량함을
아
두 번 청량했다간 몸져눕겠습니다
비 좀 맞는다고 안 죽는다
하긴
여인인 넌 다르겠구나
뭐 하고 선 게냐?
어서 뛰질 않고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지켜준다고 약조했잖아, 내가
이거 지켜주는 거 맞아?
같이 망하는 거 아니고?
괜찮다
너와 함께라면
너 진짜 어쩌려고…
진짜 빛이 나네
너랑 함께하니
어, 뭐야 나온다, 나온다!
나온다! 나온다!
이보시오! 제가 다 해명하겠습니다
- 모델 아니야? 그 모델 - 신서리
맞습니다 제가 바로 그 소문의 인사
신서리입니다
너 미쳤어?
여기 차세계 대표님은
제가 속한 회사의 우두머리십니다
일단 대표님이
그날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 손모가지를 걸고 장담합니다
그날 대표님은
소속사 배우 관리 차원에서 동행하신 것뿐인데
이렇게 오해를 사게 만든 점
깊이 사죄드립니다
오해란 말은 스캔들을 부인하는 겁니까?
그렇다면 한밤중에 단둘이 바닷가에 간 이유가 뭡니까?
야밤에 촬영장에 복귀한 이유는 바로
이 몽돌 때문입니다
몽돌? 저게 뭐야? 돌멩이 아니야?
몽돌? 그냥 돌멩이 아니야?
몽돌 반출로
과태료가 부과될까 염려하신
차세계 대표님의 지도 편달하에
이, 원상 복구를 시켰습니다만
그만 만취한 상태로 이 하나를 빼먹었습니다
이 몽돌 또한 조속히 복귀시킬 것을 약속드리며
그간의 오해를 풀고자
이 자리에서 대표님이 조용히 하시려던
선행을 밝히고자 합니다
선행? 무슨 선행?
차세계 대표님은
이번 광고 촬영을 통해 얻은 수익금 절반을
탐라도 환경 보호를 위해 기부하기로
통 크게 결정하셨습니다
내가?
우와
네
아, 비오제이는 친환경을 슬로건으로 건 기업으로서
에코 프렌들리 정책에 앞장서겠다는 입장입니다
에코 프렌들리요?
새롭게 론칭한 다이너스티의 광고 촬영지로
천혜 자연의 보고
제주도를 선정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와, 둘이 아주 쿵짝이…
아, 그리고 중요한 사실 하나 더
저는 정인이 따로 있습니다
네? 에? 갑자기?
관옥같이 수려한 얼굴에
이 고매한 학 같은 성품을 지닌 분이시죠
그러니 이와 관련된 억측과 풍문은 자제를 부탁드리며
그럼 저는 이만
총총! 으흐흐
신서리 씨! 신서리 씨!
자, 자, 자세한 입장 발표는
저희 홍보 팀 통해서 다시 한번 전달드리겠습니다
하…
신서리, 너 미쳤어? 지금 뭐 하는 자폭 테러야?
흠, 쯧, 아둔한 것들
역시 계책이 먹혔구만
- 뭔 계책? - 병법 제35계 연환계
일단 미인계를 이용해
적의 시선을 교란시키고
고육계로 약세의 판도를 돌린 연후
이리 사슬처럼 여러 계책을 묶어 시간을 번다
이 틈에 역전의 기회를 도모하는 것이지
계책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기부는 또 뭐야?
수익금의 절반이면 너 그게 자그마치 얼만 줄 알아?
알아야 되냐?
이래서 있는 놈들이 더 돈돈거린다더니
다들 안 그래도 나 언제 망하나 지켜보고 있는 상황인데
기부를 하나, 안 하나 엔터 쪽박 차나, 안 차나
그것까지 사찰당하게 생겼다고 지금 내가
기분 탓이다
뭐, 세상이 다 제 위주로 돌아가는 줄 아나?
잔말 말고 이만 밥이나 한술 뜨러 가자
지금 생돈 갈취당하게 생겼는데 밥이 넘어가겠어, 내가?
- 으아… - 잘만 넘어가네
역시 금강산도 식후경이지
크흠
이제 어쩔 거야?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다 해결할 텐데
왜 나서가지고 노선 꼬이게 만드냐고
그럼 가만있냐?
네가 승냥이 떼에게 억울하게 물어뜯기게 생겼는데
기껏 구해주러 왔구만
구해줘?
난 또 뭐 진짜 선언이라도 하는 줄 알고
심장 떨어질 뻔했잖아
내가 뭐, '네 여자다'
공표라도 할 줄 알고 쫄은 거냐?
쫄았지, 그럼
너까지 세트로 진흙탕 구를까 봐
겁나던데
나도 생각이란 게 있는데 그리 무도할 리가 있나
나는 이제 '누구누구의 여자'
그딴 꼬리표는 아주 딱 사절이다
꼬리표?
강가 단심
어찌 이런 귀물이 네 수중에 있는 게냐?
아, 그, 그것은 소인의 것입니다
이 옥은 청에서도 황궁에 진상되는 귀한 것인데
어찌 거짓을 고하느냐!
여봐라
- 당장 저년을 끌어내 매우 쳐라! - 예
마마님, 잠시만
딱 한마디면 된다
하면 너는 살 방도를 마련해 주마
대군과 정을 통했다 하거라
이리 입을 다무는 걸 보니
이미 마음을 주었구나 어리석은 것
대군에게 너 같은 나인이 어디 한둘인 줄 아느냐?
너같이 외로운 궁녀는 이 궐에 발에 차이도록 많다
사내가 감언이설로 희롱하는 건 일도 아니지
그럴 리가 없습니다 대군께선 그러실 분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대군은 그분의 눈 밖에 난 이상
살아남지 못해
하니 선택해라
대군의 정인이 되어 죽든지
역모의 증인이 되어 살든지
선택이라니
애초에 궁녀 따위에게
선택의 권한이란 게 있긴 했던 걸까?
내 설사 다시 생사의 기로에 선다 해도
사내 뒤에 비겁하게 숨는 일은 하지 않아
뭐, 지금 시국 선언 해?
감자탕집에서 이렇게까지 비장할 일이냐고
내 마음가짐이 그렇단 거다
하니 너도 잘 알아둬라
나는 이번 생엔 기필코 내 발로 우뚝 설 것이니
쯧, 잔말 말고 옆에서 응원이나 하라고
나는 가끔 네 그 근자감에 압도돼
아주 장하다, 신서리
장하지, 그럼
나 정도 악바리면 옥황상제도 울고 갈걸?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 말고 계세요
뭘 다 알아서 한다는 건지…
할아버지
아니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세계 씨가 많이 곤란해 보여서요
제가 좀 나서도 될까요, 할아버지?
조심히 가세요
아니, 무슨 밥을 산다고
나는 일평생 여자한테 밥을 얻어먹어 본
역사가 없는 사람이라고
근데 하필 너한테, 아이…
이거 무효야
나 데이트로 인정 못 해
그럼 만날천날 얻어먹고 댕기냐?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 된다
탈모는 또 되게 무서운가 보네 여자 탈모 안 오거든?
아니던데?
환경 호르몬 문제도 있고 미세 플라스틱 문제도 있고
여자도 탈모 안 온단 보장이 없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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