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200 lines.
뭐야
망태기에 아무것도 없네
악! 어어, 어어
석 달 내내 온 산을 다 들쑤시고 다니는 거 같더니만
누, 누, 누구요?
한양이 어디야?
에?
내가 오늘 한양엘 가야 하거든
그니까 어느 쪽이냐고, 방향이
한양이면 뭐, 저쪽이긴 한데…
아, 저쪽?
근데 한양까지 족히 스무 날은 더 걸릴 것인디…
어?
아, 맞다
으메! 으아
어! 우와, 와, 와…
그거 캐다가 반나절 정성껏 달여
어머니 병환에 차도가 있을 거야
에?
허…
이것은 옛날이야기다
심봤다!
인간이 되고자 했던 구미호가
묘향산에서 덕을 쌓던 그 시절의 이야기
잠깐 자리 좀 비켜줄래?
춘심이만 남고
춘심아
네가 춘심이야
춘심이는 어찌했니?
예?
그게 무슨…
너
다 티 나거든?
인간 다 된 줄 알았더니 눈치는 순 여우네
어떻게 알았어?
냄새
너한테서 흙냄새가 나
수백 년간 맡았던 묘향산의 흙냄새
잘 지냈어?
나는 뭐, 그냥 심심했지
언니가 없어서
아, 춘심이는 걱정하지 마
부엌에서 졸고 있을걸?
알았어
기분이 어때?
그렇게 기다리던 혼례식 날이잖아
아직도 실감이 안 나
내가 인간이 돼서 그리던 낭군님과 맺어진다는 게
치
그래, 나 버리고 가서 잘 살아라, 아주
이리 와, 은호야 오랜만에 안아보자
언니
옛날이야기는 보통 여기까지다
'마침내 인간이 되어 사랑하는 이와 혼인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끝
이리 안 와?
와, 대박
허!
이거 봐
이거 머리꽂이 신품인가 봐
되게 예쁘다!
이거 나한테 잘 어울리지?
언니?
어?
뭘 그렇게 정신 빼고 보고 있어?
어쩔씨구리
뭐, 뭐가?
쯧쯧, 쯧쯧
어쩐지 저잣거리에 나오자고 하더니만
다 속내가 있었구먼
그런 거 아니야
볼일 다 봤으면 이제 그만 가자
낭자!
여기서 또 보는구려
예, 도련님
어찌 이렇게도 마주치네요
행복하게 잘 살아, 언니
그러나 나는 알지 못했다
저쪽이다!
인간의 삶은 한없이 나약하고
그들의 행복은 너무도 쉬이 부서진다는 걸
생은 고단하고
죽음은 늘 가까이에 있다는 걸
그것은 다가올 미래였다
그러니까 언니는
결국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을 사랑하여 인간이 된 탓으로
그리하여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
인간을 사랑하지 않고
인간이 되지 않으려 하는
그런 구미호
내가 왜 아무런 능력도 없고
늙고 병들고
결국은 죽어버리고야 마는
시시한 인간 같은 게 되어야 한단 말인가
지금 이곳에서
어떤 삶은 끝나고
어떤 삶은 시작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9년 전에 시작되었다
여기, 여기, 이쪽으로!
패스, 패스, 야, 저쪽!
야, 이쪽 막아! 나간다, 나간다
그래그래!
하, 마, 좋지요?
쟈가 현우석입니다
인자 막 고등학교 3학년
처음 13세 이하 국가대표에 뽑힌 뒤로 줄곧
연령별 대표 팀 붙박이 스트라이커를 하던 선수입니다
야, 우석! 야, 패스, 패스, 패스, 패스
패스! 야, 이쪽 막아
아이, 저, 야, 이 새끼야 돌아이 새끼야
야, 우석이가 비었잖아
헛짓거리하지 말고 인마, 패스하라고
저 선수가 누구냐고 묻는데요?
누구요?
- 아이… - 저 친구요
- 헤이, 헤이, 헤이! 파울이잖아요 - 아까 헛짓거리
아, 강시열이
아이고, 마 쟈는 마, 그냥 또라이입니다
마, 저 시끼 저거 뭐
겉멋만 들어가꼬 마, 패스는 안 하고
마, 지 혼자 다 할라 칸다 아입니까?
야, 이 시끼야, 강시열이! 그냥 발만 갖다 대, 발만!
헛짓거리하지 말고!
아, 저, 씨…
우석이, 나이스 어시스트
어시스트
너는 이 새끼야 감독이 하는 말이 우스워? 어?
내가 공 잡으면
무조건 우석이한테 패스하라고 했지?
오늘 새로 부임한 청소년 국가대표 감독이
우석이 뛰는 거 보러 왔다잖아
니가 애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친구 앞길을 막으면 되겠냐?
제가 골 넣는 게 우석이 앞길을 막는 거예요?
그러니까 니가 왜 거기서 골을 집어넣냐고!
내가 오늘 너한테 수비 보라고 했지
언제, 어? 공, 골 넣으라고 했어?
지 혼자 튀겠다고 눈이 뒤집혀 가지고
엎드려
축구부 회비도 한 번도 제대로 안 내는 새끼가
싸가지는 없어가지고
고생했다
- 에헤이, 야들아 - 많이 먹어, 많이 먹어
이거 우석이 아버님이 쏘는 거니까는
'감사합니다' 카고 무야지, 씨
아유, 코치님 뭘 이런 걸로, 하하
- 자, 더 먹어 - 야, 강시열!
아빠, 잠깐만
- 어, 그래, 아아 - 들고 있어
강시열
아, 됐어, 안 먹어
아이, 아유
아이고, 감독님
아유, 아유 반갑습니다, 하하하하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유,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기, 이걸로 다음에 애들 고기나 좀 사 먹이시죠
아유, 매번 감사합니다 우석이 아버님
아, 하하
감사합니다, 예, 예, 하하하하
단군 이래 최대 재개발로 꼽히는
서울 반남 2구역의 시공사가 오늘 선정됩니다
수주 경쟁에는 1군 건설사 세 곳이 뛰어든 가운데
전문가들은 최근 갑질로 논란 중인 금수건설보다는
다른 두 개 사의 선정 가능성을 유력하게 보고 있습니다, 또한…
왜 끄지?
잘 듣고 있는데
죄송합니다, 상무님
다시 켤까요?
쯧
내 생각엔
갑질보다는 을질이 문제야
내가 돈 주고 운전시키는데
왜 운전에 집중을 안 하지?
저, 상무님, 저, 그게 아니라…
라디오에서 내 욕 나오니까
왜, 귀가 막 솔깃한가?
아닙니다, 상무님
절대 그런 일이 아니고…
빨간불
어!
뭐야?
운전 좀 똑바로 하세요!
"금수이앤씨"
떨어졌네, 재수 없게
직접 운전해서 오셨습니까?
그렇게 됐어
그런데 상무님
임원 회의 결정 사항도 있는데 괜찮을까요?
하, 뭐?
꼰대들이 나보고 처박혀 있으라고 한 거?
굳이 상무님까지 나설 필요가 없는 일입니다
원래부터 수주가 어려웠던 사업인데
상무님께서 모든 책임을 덮어쓸 위험이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너는 월급쟁이나 하는 거야
- 셔츠나 벗어 - 예
운전기사 새로 뽑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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