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200 lines.
임진왜란 때
아이를 잃고 한없이 달린 적이 있었다
정신없이 뛰다 보니
어느샌가 내 숨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하얀 메밀꽃밭에 이르러서는
문득
'힘든 순간들은 흘러갈 것이고'
'나는'
'어딘가에 도착해'
'다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억 속에 있는 첫 번째 생의 인연을 찾아야 돼요
전무님
회장님
왜?
자살사로 처리될 모양입니다
나 문 회장한테 받을 거 아직 많아
우리 찬혁이도 그렇고
내가 유일하게 져 주는 사람
장 대표 너 하나인 줄만 알아
네, 회장님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네, 알겠습니다
자기 바꾸래, 전화기 죽었니?
뭐 해? 받아
예, 회장님
예, 알겠습니다
왜? 뭐라시는데?
내일 조찬 하자고
아, 무슨 일인데 나한테 전화해서 자길 바꾸래?
서하 문제 복잡해지니
장 대표가 나 부른 거 알았겠지
됐다
나 먼저 간다
혼자 마시라고?
갑자기 부른 이유는
자네가 더 잘 알겠지?
서하랑 같이
현장에 있었다며?
네, 회장님
서하를 위한다면
쓸데없이 위험한 일에 엮이는 건 막았어야지
숨기는 게 있으신 건가요?
뭐?
어릴 때 전무님이 죽을 뻔했고
이번엔 다쳤어요
누구보다 아버지가 먼저 나서서 범인을 잡아야 하지 않나
해서요
경찰이 잡겠지
난 애비로서 아들을 지키는 거고
자네만 조용히 하고 있으면 돼
제 입단속을 시키는 게 아들을 지키는 거다?
혹시
이미 범인을 알고 계신 건가요?
자넨 말이 통하지 않는구먼
난 분명히 경고했어
그만 가 봐
그때 그 뺑소니범 내가 섭외한 거거든
야, 야, 야, 야
- 잘못됐다, 이거 - 네?
챙기고 너 먼저 튀어
지가 형님을 두고 어떻게 가요
괜찮아 먼저 가라고, 이 새끼야
가라고, 가라고, 가, 빨리!
짠
아이고, 오메, 맛난 거
자, 자, 우리 민기 먼저
네
오메, 잘 먹네
와, 맛있는데요
- 그려? - 네
민기야
뭔 사연으로 그라고 나당기는지 몰라도
끼니는 거르지 말어
잉?
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허고잉
네
자 그런 의미로다가
한 번 더 드릴게요, 자
어? 저 아직 다 안 먹었는데
- 다 안 먹었어? - 네, 드세요, 드세요
- 너무 많어? 자, '아' - 아
아이고, 누가 보면 잃어버렸던 아들 찾은 줄 알겠수
아따, 먹을 복 있네 언능 와, 방금 했어
언능 앉아, 응
됐어, 피곤해서 안 먹혀
피곤해? 그래도 좀 먹제
자
이게 뭐대?
그냥 지나가다가 어울릴 거 같아서
으메
이거 내 거여?
오메, 뭔 일이여, 참말로
오메, 세상에, 오메
내가 겨자색을 좋아해
오메, 이쁜 거
이 안에 항상 너 있다
이 안에도 너 있다
- 오메 - 잘 어울리시는데요
- 아, 그려? 잘 어울려? - 네
잘 어울려요
- 시상에, 오메, 오메 - 민기 씨
- 아따, 이쁜 거 - 잠깐 저 좀 볼까요?
잠깐 빌릴게
먼저 드시고 계세요
둘이 친해졌네
아따, 곱네
첫 번째 생의 기억이 떠올랐어요
아니, 떠올랐다기보다 보였어요
이거 무령 때문인 거죠?
자세히요
처음 가 본 곳이었어요
어떤 사람 뒷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위로 겹쳐 보였어요
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중에 아는 얼굴도 있었고요
누군데요?
이번 생에 저한테 아주 소중한 사람이요
강민기 씨
강민기 씨 하필 여기로 온 게
우연 맞아요?
혹시 내 첫 번째 생에
강민기 씨가 있어요?
왜 말이 없어요?
설마 우리
천 년 전에 사귀었어요?
그럴 리가
아, 그래요?
난 또 첫사랑인 줄
잠깐
무령 잡아 봐요, 다시
그럼 알 수 있잖아요, 반지음 씨
서하가 첫 번째 생의 인연인 건가?
다시 잡아 봐요
됐어요, 충분해요
그럼 이만
오셨습니까, 천운 님
우리 형님 자살 아닙니다
이 안에 범인을 밝힐 증거가 있다고 했수다
'덤프트럭 작업'?
'98년 4월 23일'
'반학수'
'반동우'
그게 그냥 사고가 아니라고 하는 걸
내가 똑똑히 들었다니까요
이게 가끔은
전생의 악연이 혈육으로 얽히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땐 그냥
손절이 답인 거 같아요
뭐가 이렇게 무서워?
무서운 게 아니라 무거운 거죠
사는 일이라는 게
아, 에이씨…
- 반지음 - 씨, 내놔
이놈 이거 뭔데, 이거?
아, 내놔, 좀
'MI 호텔 문서하 전무'
아, 뭐 그거 알아서 뭐 할 건데?
- MI… - 아, 줘!
- 아, 내놓으라고! - 자식이, 이게
이게, 이게! 쯧
- 아씨… - 음
아씨
여보세요
어디예요?
자려고요
에이, 귀뚜라미 우는 소리 다 들리는데, 뭘
밖이에요?
잠이 안 와서 바람 좀 쐬고 자려고요
아, 재워 주고 올걸, 아까워
반지음 씨 잘하는 거
그것 좀 해 줘요
전무님, 만약에
우리가 전생에 만난 적이 있다면
어떤 사이였을 거 같아요?
글쎄요
한번 상상해 봐요
한 천 년 전쯤에
우리가 만났다면?
음…
장군과 조랑말?
조, 조랑말?
아, 여기서 장군은 지음 씨
- 아이 - 내가 조랑말
이분 참 로맨스에 소질 없으시네
자, 봐 봐요
낙화놀이가 한창인 구름다리 위에
두 남녀가 마주 보고 서 있어요
남자는 달처럼 환하게 빛나는 용모에
여자는 활짝 핀 연꽃처럼 아름다워요
그렇게 처음 본 우리는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거예요
어때요?
- 어디 더 해 봐요 - 아
그렇게 엄청나게 사랑을 하다가
역적으로 몰려서 안타깝게 죽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 못다 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이번 생에 다시 만나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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