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200 lines.
214 번째 2/2/2015
이 영화나 이 영화에서 제기된 의견들, 사용된 영상과 이미지들은
스탠리 큐브릭의 가족, 워너 브라더스사,
혹은 '샤이닝' 영화 제작자들과 아무 상관 없습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표현된 의견이나 관점은 오로지 해설자들의 것이고
스탠리 큐브릭이나 '샤이닝' 제작자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유럽
영화가 유럽에 개봉하기 전
유럽에 나왔던 포스터에는, 최소한 영국에서 포스터 카피는
'미 전역을 휩쓴 공포'였죠
큐브릭은 포스터를 굉장히 조심스럽게 만들었어요
이제...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포스터였어요
당시 저는 ABC 뉴스의 로마지국장이었는데
포스터를 보면서 '미 전역을 휩쓴 공포?'
'무슨 소리지?' 생각했죠
'샤이닝'이란 책의 임팩트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라 생각할 수도 있어요
어쩌면...
미국에서 막 개봉한 영화의 임팩트 얘긴가?
어쩌면...
딱 맞아떨어지진 않았어요
미국 서부에서부터 동부까지를 휩쓴 공포는
전부다 쓸어버리고 채굴산업을 들여온
도끼를 든 백인과 대학살 군인들이었죠
다른 좋은 일들도 많았지만
그게 미국을 휩쓴 공포였죠
당연히 인디언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공포요
ROOM 237
9개 파트의 '샤이닝'에 대한 연구
인터뷰한 사람들
빌 블랙모어 런던의 레세스터 극장으로 이 영화를 보러 갔었습니다
상당히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앉았던 자리까지 기억납니다
그 극장에 다시 가면 그 자리를 찾을 수 있어요
뒤쪽이었고 왼쪽편이었죠
헬리콥터에서 찍은 경탄스러운 오프닝부터
저는 소름이 끼쳤어요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전혀 몰랐죠
의자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앞쪽 끝에 앉았던 게 기억나요
내 왼손으로 벨트 버클을 쥐고 있었던 것도요
왼손이 맞았던 것 같아요
의자에서 떨어지지 않고 공포심을 조절하기 위해
그렇게 했었죠
영화를 보면서 무슨 얘기가 나올지 몰랐어요
책도 읽지 않았고
포스터도 거의 못 봤어요
영화가 끝났을 때 굉장히 멍했던 게 기억납니다
극장을 나와서 차를 타려고 지하 주차장으로 갔는데
주차장 밖으로 운전해서 나올 때
저는 뒷좌석에 앉아 있었어요
저는 생각했어요 '뭐였지? 그건 뭐였지?'
'그건 뭐였을까?'
제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햘로렌이 대니와 얘기할 때 뒤에 보였던
Calumet 베이킹 소다 캔이었어요
Calumet뜻을 알고 있었어요 평화의 담뱃대죠
저는 생각했어요
'평화의 담뱃대, 인디언들...'
'세상에, 영화 곳곳에 있었어'
진 사람이 미국을 깨끗하게 지켜야 해
난 갑자기 친구에게 말했죠
"그 영화는 인디언의 집단학살에 대한 영화야"
친구들은 말했어요 "대체 무슨 소리야?"
전 설명하기 시작했죠
CALUMET 베이킹 소다 캔이 눈에 띄었다고요
처음에 하나가 보이죠
캔 하나가 똑바로 보였어요
'Calumet'이라는 단어 전체가 보이죠
그러니까, 나중에 나오는 쌍둥이처럼
이중적인 건 없어요
이건 정직한 협정이죠
그들 사이의 정직한 평화의 담뱃대예요
그 다음에 아주 조심스럽게 배치된
Calumet 소다 캔을 또 보게 되는데요
바로 그래디와 얘기나누는 잭 니콜슨의 머리 뒤쪽입니다
아픈 데 또 찌를 필요 없잖아요, 그래디 씨
여기서 나가자마자 상황을 해결할 겁니다
6, 7개가 쌓여있고
전부 방향이 달라서 글씨가 온전히 읽히지 않아요
저는 그걸 깨져버린 부정직한 협정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래디와 잭, 이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정직하지 않죠
그래디는 잭이 가족을 죽이게 만들려고 하고
영화 전체로 생각해보면 대학살을 하게 만들려 하죠
큐브릭은 종종 자기 영화를
퍼즐을 남기고 끝냅니다
그래서 관객이 극장을 나서면서 생각하게 만들죠
'대체 무슨 내용이었지?'
그리고 장면장면에 장치들을 넣는데,
관객이 영화가 얘기하고자 하는 걸
알아내려 애쓰기 시작할 때
확증으로 작용하게 될 장치들인 것이죠
그는 그런 종류에 세심하죠
어떤 책에 사진이 있는데
실제로 큐브릭이 그 식품창고 선반에
물건들을 세심하게 진열하는 모습을 담았죠
나중에 든 생각은 '어째서 나는 그걸 봤고'
'많은 사람들은 못 봤지?' 그러고 나서 생각했죠
요소들의 결합이었던 거예요
첫째, 저는 시카고에서 자랐어요
Calumet 항구 북쪽에서요
그리고 여름은...
미시건 호수 건너편의 모래언덕에서 보냈죠
아버지는 저와 여동생을 데리고 나가서
인디언 도기를 수집했어요
1980년에 전 이미 5년 간의 레바논 내전을 취재했고
요한 바오로 2세도 취재했죠 그때 로마 지부장이었어요
교황이 했던 얘기들을 들었죠
그는 유대인 학살을 그 중심에서 경험했고
다른 무서운 일도 겪었으니까요
그래서 그런 요소들이 머릿속에
꽤나 생생하게 살아있는 상태로
'샤이닝'을 보러 갔었죠
그냥 훌륭한 감독이 만든 공포영화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Calumet 베이킹소다 캔이라는
그 작은 단서 하나에 따라나온 모든 요소들 때문에
레스터 스퀘어 근처의 지하주차장에서 나오면서
그런 얘기를 하게 된 겁니다
줄리 컨스 저는 영화가 나온 1980년에 처음 영화를 봤어요
아마 두 번 봤을 거예요
스키 포스터를 본 기억이 나요
그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었죠
그리고 창문도요
사무실의 창문도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어요
이후에 신문에 사람들이 실망했다고 하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나요
제가 아는 사람들도
실망감 단순한 공포영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 책 속 자상한 아내를 실실 웃는 반멍청이로 바꿔... 실망했던 걸 기억해요
큐브릭의 영화는 정말 그냥 보통 영화가 아니에요
저는 그걸 10살 때,
'2001'을 처음 봤을 때부터 이해하고 있어요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생각했죠
'이 영화는 나를 생각하게 만들려는 거구나'
처음으로 종교적인 경험을 하게 된 것이
제이 와이드너 1968년에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보면서였어요
저는 똘똘한 아이였고 예술을 좋아했어요
하지만 영화는 정말 좋아하지 않았죠
영화는 표준 이하의 예술이라고 생각했었어요
'마이 페어 레이디'나 '닥터 두리틀' 같은 영화가
세상에 나왔는데
60년대는 영화계의 다소 한심한 시기였죠
여자친구가 차를 세우더니 전날 밤에 영화를 봤는데
또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녀가 절 시네라마 돔 극장에 데리고 갔고, 영화를 봤죠
저는 그때까지도 영화가 이런 걸 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전에는 본 적 없는 걸 보여주고 있었고
지적으로 자극적이었어요
모든 면에서 예술적인 걸작이었어요
사운드트랙부터 영상, 스토리까지요
영화가 끝났을 때 의자에서 일어나질 못했어요
의자에 얼어붙어서
방금 본 것들에 완전 마비가 됐죠
안내인이 와서 저를 내보내야했어요
저와 여자친구가 마지막 사람이었죠
인간으로서 완전히 변화해서 극장에서 비틀거리며 나왔고
그 순간에 남은 일생 동안 하고 싶은 단 한 가지를
결정했어요
어떤 형식으로든 영화를 만드는 거였어요
그리고 해냈죠
저는 스탠리 큐브릭과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빚진 셈이죠
제 인생에서 이룬 모든 것에 대해서요
제프리 콕스 큐브릭에 대해 학문적인 관심을 갖기 전에
그의 영화는 많이 봤었죠
그러다 1980년에 '샤이닝'을 보러 갔어요
솔직히, 별로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큐브릭 영화들이 훨씬 훌륭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후에 그 영화에 대해 생각해보면
생각하지 않을 때조차도
그 영화에서 뭔가가 걸리는 게 있었어요
제가 놓친 뭔가가 있는 것 같았죠
그래서 다시 보러 갔어요
지난번에는 눈치채지 못했던 패턴과 세세함이
보이기 시작했죠
그래서 계속해서 보고 또 봤어요
제가 역사가로서 교육을 받았고
특히 제가 독일과 나치 독일에 전문가였기 때문에
점점 더 확신이 들기 시작했는데, 이 영화에는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내용을 저변에 깔고 있었어요
제 생각에 그건 아마도
타자기였을 거예요
독일 제품인데 임의대로 쓴 걸로 보이지만
그 시기쯤에는 큐브릭의 영화에서는
대부분의 것들이 임의적인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었죠
그 어느 것도, 특히 물건이나 색,
음악과 그 어느 것에도 어떤 의도적이거나
비의도적인 의미가 다 있는 거였죠
그래서 생각한 거죠 왜 독일 타자기였을까?
그리고 그것과 연관해서
영화에서
숫자 42가 등장하는 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독일 역사가로서,
숫자 42와 독일 타자기를 함께 놓고 보면
유대인 대학살이 나오죠
나치가 모든 유대인을 말살하기로 결정한 게
1942년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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