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200 lines.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단 한 번도 의미 있는 여름을 보낸 적이 없다고
일반적으로 여름은 인간이 성장하는 계절이라고 한다
누구든 여름을 통해 좀 더 성장할 수 있다
변화한 모습을 모두에게 과시하며 영광의 순간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빈틈없는 계획, 규칙적인 생활 육체 단련, 학문 정진이 필수다
하지만 하숙집에서의 세 번째 여름 나는 초조함에 사로잡혀 있었다
교토의 여름
나의 좁은 하숙방은 마치 사막 같은 불지옥으로 변한다
목숨을 위협하는 가혹한 환경에서 생활 리듬은 무너져 가고
빈틈없는 계획은 탁상공론으로 변해
무더위가 육체적 쇠약과 학문적 후퇴에 박차를 가한다
그 상황에 인간이 성장을 이룬다니 부처님이라도 무리일 거다
아, 꿈은 깨지고 하숙방만 남았구나
대학 재학생이라는 수련 기간도 반환점을 지났다
그렇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의미 있는 여름을 보낸 적 없으며
사회에 필요한 인재로 자라나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손 놓고 있다간 난 사회의 냉혹함을 맛보게 되겠지
기사회생의 타개책은 바로 문명의 이기인 에어컨이었다!
하지만...
응?
선배!
뭐야? 무슨 일 있어?
준비도 완벽하네
기다린 보람이 있겠는걸?
아, 멋대로 켜지 마세요!
선배
정말로 하실 거예요?
응? 하다니 뭘 말이야?
그러니까 그...
자, 그럼 춤을 춰 주실까?
춤? 누가 말이야?
알몸 댄스 말이야
알몸 댄스? 내가 왜?
모두 기대하고 있다네
막판에 꽁무니 빼면 꼴사나워
우리가 관객이 돼 줄게
저기, 무슨 얘기인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정말이지
이걸 써서 이렇게 춤추면 되잖아!
아이고!
리모컨!
- 잠깐! - 비켜!
정말, 뭐 하는 짓이야?
실수해 버렸네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다다미 넉 장 반 타임머신 블루스
야, 오즈
왜 불러?
살아 있냐?
내 걱정이라면 하지 마 곧 죽을 목숨이거든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시모가모 유스이 하숙이다
원래 이 부근이 늪이라 그런 음침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래선지 여름엔 건물 전체가 태양에 달궈진 찜통처럼 변한다
에어컨을 잃은 지금 나의 209호실의 불쾌지수는 최고다
망고 프라푸치노 마시고 싶어
에도 시대식 미네랄 보충은 이제 진저리 나
닥치고 마셔
아, 맛없다, 맛없어!
병든 두꺼비가 흙탕물을 훌쩍이듯 미지근한 보리차를 마시는 이 녀석
오즈는 나와 같은 학년이다
약자에게는 채찍질 강자에게는 아부
제멋대로에 오만하고 게으른 심술쟁이
어디 하나 칭찬할 구석이 없다
만약 녀석을 만나지 않았다면 내 영혼은 좀 더 맑았을 텐데
반성은 좀 했어?
왜 내가 반성을 해야 해?
네가 리모컨 고장 냈잖아!
이건 연대 책임이야
하숙집에서 영화를 찍자고 한 아카시 잘못도 있고
리모컨을 멋대로 만진 조가사키 선배
그리고 마시다 만 콜라를 둔 하누키 누님도 잘못했지
제일 잘못한 사람은 하숙방에서 알몸 댄스를 보여 주려고 한 너야
알몸 댄스는 대체 뭐냐고!
이제 와서 모른 척하기는!
게다가 에어컨 본체에 조작 버튼이 없다니 이상해
설계부터 잘못됐다고
이 액체 괴물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애초에 이 에어컨은 오래전부터 내 방에 있던 전설적인 에어컨이다
주인 할머니의 허가 없이 설치한 옛 하숙생의 호걸스러움이 빛나는
이 역사적 유산은 모든 하숙생의 부러움을 샀다
1학년 여름
자칭, 히구치 세타로라는 화석 선배로부터
209호실에 대한 소문을 처음 들었다
자네는 알고 있나?
우리 시모가모 유스이 하숙에 에어컨이 달린 방이 있다는 걸
그곳은 아서 왕이 최후를 맞은 전설의 섬, 아발론처럼
나와 동떨어진 환상의 땅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2년 후
설마 내가 바로 그 209호실로 이사 가는 영광을 얻을 줄이야
하지만 일부러 1층에서 2층으로 이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에어컨의 축복을 누린 것은 고작 며칠뿐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사도 안 했을 거다
1층은 아직 이렇게 덥지 않을 텐데 모든 원흉은 바로 오즈다!
애초에 에어컨 따위로 인간이 성장을 이룰 수 있겠어?
인생을 만만하게 보면 안 돼
난 온 힘을 다해 널 망쳐 줄 거라고
넌 이 상황이 재미있냐?
상상에 맡길게
메마른 황야로 날 이끄는 메피스토펠레스
남의 불행에 밥을 세 그릇은 말아 먹을 놈이다
반성하는 척이라도 좀 해 봐!
나한테 반성이라는 감정은 없어!
왜? 항복이야? 응?
기다려 봐, 일단 휴전이야
손님 왔다고
사이좋은 모습이 참 바보스럽네요
아카시는 같은 학교 1년 후배다 영화 동아리, '미소기' 소속이며
준비, 액션!
자신만의 가치관이 담긴 영화를 마구 찍어낸다
같은 동아리인 오즈의 말에 따르면
회원 사이의 작품 평가는 애매하다고 하는데
남이 한 편 찍을 때 세 편을 찍는 프로다운 일 처리에는
모두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더위 때문에 우리가 잠깐 미쳤었나 봐
오해받을 소리 하지 마! 아무것도 아니야!
잠시 성적인 행위인가 했어요
보면 안 되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문이 열려 있어서 말이죠
뭐 애정이 담긴 행위이긴 했지
잊어 줘, 아카시, 부탁할게!
알았어요, 잊을게요
다 잊었어요
아카시는 충실한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다
오전 7시에 일어나 아침 해에게 인사하고
영양가 있는 아침 식사를 마친 뒤
대학 부속 도서관에서 2시간 동안 열심히 공부한다
신작 대본을 쓰고 시모가모 납량 헌책 축제에 간다
"헌책 축제"
이렇게 생산적인 아카시와는 반대로
우리는 서로 노려보며 땀을 짜내기만 할 뿐이다
인생의 서머 타임은 얼음처럼 녹아간다
오즈 선배는 어제 여기서 주무신 거예요?
새벽까지 에어컨 장례식을 치렀거든
스승님께서 반야심경을 읊어 주셨어
웅얼웅얼 중얼중얼 웅얼웅얼 중얼중얼
무념무상에 이르면 하숙방도 가루이자와처럼 시원하리라
어허!
물론 일반인인 우리 입장에서 방은 더욱 더워지기만 했고
무언의 눈총을 받은 난 오싹오싹했지
오즈 선배는 변태니까요
역시 같은 제자라 잘 아는구나
히구치, 210호, 히구치 세타로
방에 있는 거 다 안다 월세 내러 오너라
스승님은 아직 주무세요?
늦잠 자는 건 태산처럼 월세를 미루는 건 바람처럼
감탄했습니다
다들 믿기 어렵겠지만 아카시는 오즈와 함께
화석 선배인 히구치 선배의 제자가 되었으며
작년 말부터 이 하숙집에 드나들고 있었다
선배가 무엇을 가르치는지 알 수 없고
아카시가 청춘을 허비하지 않기를 바라는 한편
다 쓰러져 가는 우리 하숙집을 방문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었다
근데 아카시, 리모컨 수리는...
수리점을 돌아보긴 했지만... 안타깝게 됐어요
실패였구나!
일단 맡겨 두고 왔지만 가망은 없을 거래요
아카시 너한테 실망했어
넌 입 다물고 있어, 영원히!
오즈 선배 말이 맞아요 안타깝네요
꼼짝없이 남은 여름방학을 찜통 하숙방에서 보낼 운명이구나
그럼 이제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무념무상'을 실천해야겠네
이참에 제자로 들어오면 어때? 스승님께서도 허락하셨거든
허락을 왜 받아?
괜찮아, 사양하지 말고
재미있어요, 같이 배워 보세요
야호!
그녀의 감미로운 한마디에 무너질 뻔했지만
겨우 이성의 끈을 잡았다
어쨌든 제자가 되는 건 사양이야
아, 아쉬워라
제자로 들어오면 고잔 오쿠리비도 보러 갈 텐데
싫다면 어쩔 수 없지 혼자서 KBS 교토나 봐
아카시는 시간 비워 둬
아니요, 저는 안 가요
왜? 어째서?
다른 사람이랑 가기로 했거든요
어제는 그런 얘기 안 했잖아? 누구랑 가려고?
그걸 왜 오즈 선배한테 얘기해야 하죠?
뭐?
말문이 막힌 오즈를 보자 꼴좋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나도 그때 조용히 충격을 받았는데
아카시와 함께 오쿠리비를 보러 가는 건 대체 누구야?
그녀의 표정은 한겨울에 찾아간 다다스 숲처럼 개운해 보였다
아카시...
네
안 더워?
무진장 더워요
어제, 8월 11일에는 아침부터 신작 영화를 촬영했다
'막부 말 비실이 열전 사무라이 워즈'
네
때는 막부 말기, 연호는 게이오
21세기에서 시간 이동한 대학생 긴가 스스무는
유신 지사들의 은신처에 당도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무서운 재능이 있었으니
자신과 만난 이들을 모두 게으름뱅이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의 영향을 받은 막부 말 무사들은 패기를 잃고
막부파도, 반대파도 순식간에 와해하고 만다
이윽고 사회현상으로 이어져 광란의 춤판이 벌어지고
급격한 시대의 변화를 견디지 못한 시공 연속체가 큰 붕괴를 일으켜
No comments yet. Be the first to leave one.